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사건의 동기를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는 명분 하에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여러 가지 당시의 명분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슈겐도 즉신성불 고행을 한 행자들에 대해서도
이들이 왜 이렇게 해야 했는지 그 배경을 찾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지만
사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이들의 열정적인 종교적 신념이다.
산속을 헤메며 수련하고
죽기 전 상당기간을 곡기를 끊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옻을 달인 차로만 연명하던 그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 부귀영화와 명성을 노렸을까.
그들이 밝힌 대로 대자대비, 중생구제를 위해 내 한 몸 던지겠다는 종교적 신념 외에는 설명할 길이 많지 않다.
오늘날 이러한 즉신불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이 즉신성불 수행을 한 행자의 원래 숭고한 뜻을 곡해할 수는 없다.
근대화라는 것은 전근대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을 너무 쉽게 무시하고
이에 대해 야만적이라는 아무 생각 없이 꼬리표를 달아버리는 경향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서양만 봐도 중세-.
때로는 야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그 시대 사람들의 모든 "비합리적" 생각과 행동-.
그 중에 과연 종교적 열정 아니라 딴 동기로 설명할 만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슈겐도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가 최고의 선이 된 시대에
야만적인 풍습으로 지탄받아
그야말로 종교와 수행법 자체가 풍지 박산이 난 경우에 해당하며
지금도 전 세계 매스컴에는 이들이 왜 즉신불이 되었는지 하는 그 종교적 신념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의 시신을 잘 말려 전시하는 엽기적 해프닝으로만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중세는 중세,
전근대는 전근대의 시각만으로 그 시대를 볼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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