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왕국 이 왕비를 표기에 따라 아레군드 Aregund, 아레군다 Aregunda, 아르네군드 Arnegund, 아레곤다 Aregonda,
혹은 아르네곤다 Arnegonda (프랑크왕국시대 d는 t로 발음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아레군트 정도로 발음해야 할 것이다.)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하는 모양이라
이 분을 어케 읽어야는지 모르겠다.
듣건대 대략 서기 515~520년 무렵에 태어나서 580년이라는 사망시점은 확실한 듯하니,
프랑크 왕국 왕비로서 남편은 클로타리우스 1세 Clotaire I 라 하며,
이 사이에서 난 아들이 프랑크 왕국 분국 중 하나인 네우스트리아Neustria의 킬페리쿠스 1세 Chilperic I라 한다.
아레군드는 남편 클로타리우스 다른 왕비인 인군드Ingund 와는 자매 사이로서 둘은 아버지가 튀링겐 왕 King of Thuringia 인 바데릭 Baderic 이라 한다.
전하기로는 먼저 왕비에 책봉된 언니(동생?)인 Ingund 가 자매가 혼자 지내는 모습을 보고서는 남편 클로타리우스 Clotaire 한테다가 남편감을 찾아주라고 부탁했는데
불똥은 전연 딴 데로 튀고 말았으니
직접 만나본 다음에는 그 미모에 반했던지 암튼 속으로 내 걸로 만들리라 결심하고는 마누라한테 말하기를
"내 마땅한 신랑감을 찾았노라" 고 선언했다 한다. 그 신랑감이 자기 자신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왕은 잉군드Ingund 한테서는 5남 1녀를 두고, 아레군드Aregund 한테서는 아들 하나만 두었다.
저 아레군드 무덤이 발견되고 그에서는 인골이 수습되었으니,
그에 대한 연구결과는 18살 무렵 출산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프랑크 왕국 관습에 의하면 여자는 대개 15살 무렵에 결혼했다.
다만 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는 하나 이 유해가 아레군드인지 하는 논란은 있는 모양이라,
아무튼 그가 아레군드라고 가정할 때 인골 분석 결과 그녀가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를 앓은 것으로 드러났으므로 다리를 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다.
만약 이 인골이 그 아레군드라고 하면 클로타리우스는 동정심에서 왕비 동생을 첩으로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그 증상은 결혼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유아 사망률이 엄청 높았으므로 아레군드는 언니한테서 조카와 질녀들을 부양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첩보다는 후견인으로 활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Ingund는 538~546년 무렵에 죽었다.
한편 클로타리우스는 538년에는 Aregund와 Ingund 자매 사촌인 튀빙겐의 라데군드 Radegund of Thuringia를 또 다른 아내로 맞아들인다.
아레군드Aregund와 라데군드Radegund는 남편보다 오래살았다.
라데군드Radegund는 Saint가 되고, Aregund는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다고베르트 1세 Dagobert I의 증조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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