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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아버지 전상서

by taeshik.kim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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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에 명색은 화이트칼라라지만 본색은 농민, 더 정확히는 문중소작농 아들로 농사를 지은 적 있고 그러다 어쩌다 서울로 유학하고는 용케 대학 나와 도시민 생활을 하기 시작했으니

그 인생 역전 돌아보면 이 소작농 아들이자 농사꾼 생활이 19년이요 나머지 30여 성상이 도시민, 것도 서울사람이나 아무도 나를 서울사람이라 알아주지 않는다는데 촌극이 있지 않겠는가?

이제 고작 스물넷인 아들놈은 다들 서울놈이라는데 그보다 곱절 가까이 서울을 산 날더러는 아무도 서울사람이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서울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천만에.

나는 철저히 나는 김천사람임을 위장했으니 그것이 여러모로 이득을 가져다준다 여겼기 때문이다.

영원한 김천인으로 남아 무엇을 얻었는가?

솔까 그에서 어떤 이득을 취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김천 출신이라 해서, 또 김천고 출신이라 해서

그걸로 가끔 연줄 삼아 같은 고향 선배 찾아가 깎인 예산도 복구하고 또 혹가다가는 쥐꼬리만한 사업도 따보기는 했다만

그걸로 일신영달을 꾀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위치 다른 자리 가 있었겠지만 그것이 무엇인들 아쉽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돈에 궁했으나 그 포로는 된 적 없고

때론 권력이 아쉬웠으나 내가 그 권력이 되고 싶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내가 원한 오직 한 가지는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선 실력 하나로 최고가 되어보자 딱 하나였다.

그래서 성공했는가?

모르겠다.

다만 이 분야에선 나보다 똑똑한 놈 못봤고

이 짓을 벌써 삼십년이나 해 먹었으며

또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죽을 때까지 이 자리는 언터처블이라는 생각은 한다.

어중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우여곡절은 내 그것을 강화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못난 아들이나 이만큼은 해놨으니 아버지 당신 앞에 크게 부끄러울 건 없습니다.

술 한 잔 못하신 당신께는 생평 즐긴 담배는 한 까치, 올해 유난한 물난리에 엄마 동생이 겨우 건진 작은 사과 두 알을 올립니다.

불초 돈수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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