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쌀쌀한 오늘 아침 둘러 본 로드 바이런 동상 Lord Byron Statue이 그리스 수도 아테네 중심부 근처, 국립 정원 National Garden 입구에 서 있다.
살피면 이 바이런 기념물은 어떤 여성이 바이런임이 분명한 한 남자한테 월계관을 씌워주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보통 동상이라면 그 사람 생전 모습을 전신 혹은 반신 혹은 흉상인데 그와는 사뭇 다르다.
예술성 혹은 메타포가 짙다.
그렇다. 그리스를 의인화한 여성이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1788-1824)에게 불명을 상징하는 월계관을 수여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왜 바이런인가?
우리는 시계추를 200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간단히 말해 이 동상은 그리스 독립 전쟁에서 바이런의 헌신을 기리고자 하는 그리스의 헌사다.
이 동상을 그리스에선
Ελληνικά: Άγαλμα Λόρδου Βύρωνος이라 하니 그에 대한 영어 표현은
Monument to lord George Gordon Byron, Athens, Greece.
라 아테네 바이런 기념물 정도로 옮기면 되겠다.
1809년 아테네 Psyrri 라는 구역은 지하 범죄 활동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혁명가들 집결지이기도 했다.
바이런은 이곳에 거처를 잡았다.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그는 친구 존 캠 홉하우스 John Cam Hobhouse와 함께 에피루스Epirus와 아티카Attica 지역을 탐험했다.
그가 '아테네의 하녀 The Maid of Athens'를 쓴 것은 아테네에서였는데, 이는 집주인의 딸에 대한 애정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아울러 그의 출세작 '차일드 해롤드의 순례 Childe Harold’s Pilgrimage' 일부도 아테네에서 썼다.
이 작품들은 그를 하룻밤 사이에 유명하게 만들었고, 1812년 런던으로 돌아오자마자 바이런은 유명하게 "내가 시인이라면, 나를 시인으로 만든 것은 그리스의 공기다"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오스만제국에 대항하는 그리스 독립 전쟁을 지원하고자 하는 열렬한 열망 때문에, 그는 1823년 아테네로 돌아오자에 영웅으로 환영받았다.
바이런이 이 투쟁에 참여한 것에 대한 메멘토스Mementos는 국립박물관과 베나키박물관Benáki Museum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1824년 부활절 일요일에 그는 콜레라가 만연한 메솔론기 마을에서 열병에 걸려 그리스 해방을 결코 목격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스는 거리와 심지어 그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붙인 아이들과 함께 바이런 경을 계속해서 높이 평가한다.
그의 이름 그리스어 버전 Βύρων("바이론Vyron")는 여전히 인기 있는 남성 이름으로 남아 있으며, 이 존경받는 시인을 기리기 위해 아테네 교외 이름을 비로나스Vyronas로 명명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바이런은 대부분 그의 허풍쟁이 친구들과 함께 유럽을 돌아다니며 방탕하게 살고 무모하게 시간을 보낸 거만한 문학적 유명인으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그리스에선 전쟁 영웅이다.
그는 1809년부터 1824년 사망할 때까지 간헐적으로 아테네에 살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 제도를 포함하여 그리스를 찬양하는 시를 연이어 썼고, 파르테논 대리석 Parthenon marbles을 훔친 엘긴Elgin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전쟁에서의 역할로 그리스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823년까지 그리스인들은 4세기 넘게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다.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모이고 있었고, 그들은 바이런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권유했고 비록 나중엔 그 현실에 실망했으나 받아들였다.
그는 재산 상당액을 그리스 함대 수리에 썼고, 솔리Souli 출신 군인들로 구성된 자신의 군 분대를 설치했다.
그는 또한 런던 필헬레닉 위원회London Philhellenic Committee를 통해 영국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자금 지원 결과 혁명의 여러 지도자 사이에서 논란이 얼마나 많은지를 본 그는 그리스 해방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가 죽고서 불과 8년 뒤인 1832년, 그리스는 마침내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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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 웬 바이런 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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