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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얇아지는 귀를 의심해야 한다지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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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아니하는 처지에 몰릴 때 귀는 얇아지기 마련이다. 실은 준비한 이별이라 해서 별 다를 바도 없다. 

아무튼 오랜 기간 같은 직장 혹은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조기 퇴직하거나, 설혹 정년을 채우고 나선다 한들, 물러난 직후엔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이런저런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니, 이때는 그 의도가 무엇이건 무엇을 같이하자는 제안에 솔깃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 누구나 있다고 나는 본다. 

이런 경험을 내가 일찍 했다 해서, 이후에도 그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으니, 사람이건 다른 동물이건 경험을 통해 그런 일에 대처하는 법을 훈련한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이라, 앞서 말한 대로 그것도 예컨대 사람한테 본 상처, 특히 배신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문학을 보면, 통쾌한 복수로 끝나는 장면을 너무 자주 보는데, 글쎄 그런 장면에 나 역시 통쾌하다 동조하나, 이내 그래? 내가 철천지 원수를 복수하며 씹어돌려먹었다한들 그 원한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없다. 그 상흔은 영원히 주홍글자처럼 남아 짓누르고 만다. 

요새는 어찌하다 곤혹에 처한 한 친구가 가는 자리에 동석하는 무척이나 잦아서, 자칭 백수 선배랍시고, 내가 겪은 바를 투영하며, 이런저런 말로써 점잖게 계도 혹은 훈시 혹은 충고한다지만, 나부터가 개차반인 인생을 사는 놈인데, 무슨 실질하는 지남이 되겠는가? 

그래도 덤앤더머라고, 등신 같은 두 놈이 같이 있으면 조금은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한다. 

그래, 저런 때는 귀가 얇아지기 마련이라, 내가 아무리 조급해하지 않는다 해도, 이런저런 제안이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가 위안을 주는 까닭에, 그런 말 그런 제안에 언제나 솔깃솔깃하기 마련이라, 이 유혹을 절단내야 한다지만, 그게 말이야 쉽지 당해 보지 아니한 사람은 쉽사리 공감하기 힘든 유혹이다. 

조언이랍시며, 일단 그 제안을 들어보고, 그건 아닌 듯하다, 그건 고려할 만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것이 과거의 나였고, 미래의 나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보면 참말로 기분 더럽다. 

내가 요새 이런저런 잡설 잡생각이 부쩍 많아진 까닭은 그에서 콕 집어말하기 힘든 무엇인가 아바타를 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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