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두 가지 장면이 유별나게 남는다. 첫째, 벗은 양말 아래 드러난 까무잡잡 박세리 발목이 유난히 하얬다는 점이고 둘째, 그와 막판까지 피말리게 경쟁하다가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태국계 제니 추아시리폰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박세리한테 축하의 악수 혹은 포옹을 건네러 다가서는데, 세리 팍은 그건 아몰랑 하면서 그걸 뭐라하더라? 가방 모찌하는 그 남자랑 얼싸안고 좋아라 하던 장면이었다.
나는 그 햐얀 발목보다 외려 후자가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얼마나 속이 시리겠는가? 그럼에도 그런 시림을 참고서는 우승한 박세리를 축하하려 하는데 나몰라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의 썩소를 봤다. 그러면서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참 우리 민족이 우승 그 자체에만 목마른 민족이구나 하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내가 그의 우승을 축하하지 아니한 것도 아니요, 그런 점들이 못내 아쉬워하면서 이제는 우리도 조금은 고급진 우승을 만끽했으면 싶었다.
박세리는 공주가 낳은 쓰리박 스타 일원이다. 그 선두는 판소리 박동진 옹이고, 그 뒤를 이어 메이저리그를 호령한 박찬호가 있고, 그 무렵 박세리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저 장면만이 아니라 박세리 하면 그 무서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거니와, 참말로 혹독하게 딸을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그 점에서 박세리는 축구스타 박지성, 피겨스타 김연아와 비슷한 맥을 이룬다. 이들 역시 아버지 혹은 엄마가 그 혹독함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거니와, 요새는 손흥민 아버지가 그 대열에 합류한 듯하다.
엇그제 같은 데 벌써 22년이 흘렀다 한다. 저 사건이 1998년 7월 7일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제53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니, 참말로 쏜살 같은 시간이다. 사진이 포착한 한국현대사 명장면을 표방하는 우리 공장 문화부 시리즈 [순간포착] 이번 호가 이 스포츠 대사건을 다루었다.
내가 떠난 저번주는 [순간포착]을 뛰어넘었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마뜩한 소재를 찾기 어려웠다더니, 이내 재개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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