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9. 양주 회암사지
부도(僧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으로 쉽게 말하면 스님의 무덤입니다.
삼대화상(三大和尙)이라 불리는 위대한 세 명의 승려의 부도를 보기 위해 회암사지 뒤편으로 하여 지금의 회암사로 올라갔습니다.
• 지공선사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때 지공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공선사는 인도 출신의 승려로, 마갈타국의 왕자였다고 전해집니다. 충숙왕 때에 고려에 왔고, 앞서 말씀 드렸듯 회암사을 창건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 양주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이 지내던 인도의 나란타사가 있던 곳과 양주의 산자락이 몹시 닮아서라고 전해집니다.
지공선사 부도비 옆에 있는 귀엽게 생긴 이 귀부는 어떤 분을 위한 귀부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몸퉁이 부분 없이 덜렁 이렇게 귀부와 짝을 알 수 없는 이수가 올려져 있습니다.
안내판에의하면 아무래도 지공선사 부도비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부도에서 내려다 보면
부도-상석-석등-부도비 순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봉분-혼유석-상석-장명등 순하고 비슷합니다.
• 나옹선사
지공선사 부도 위쪽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옹선사 부도가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나옹선사 부도위에 동글동글 회오리감자처럼 되어 있습니다. 나옹선사는 고려 충목왕 4년 원나라로 건너가 12년간 불법을 수학하고 돌아와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고,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의 왕사가 되었습니다.
나옹과 무학(無學1327~1405)은 원나라에 유학 할 때 같이 공부했고 그 인연으로 무학이 나옹의 의발(衣鉢)을 이어 받았다고 합니다.
• 무학대사
무학대사는 나옹 선사와 지공선사의 제자로, 나옹선사의 법맥을 이어 조선 불교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승려로, 옛 회암사가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에는 이성계와 함께 이 회암사에 머무른 적이 있다고도 전해집니다.
무학대사 부도는 위에 보았느던 지공선사, 나옹선사의 부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8각의 석단안에 부도를 봉안했는데, 부도에 용을 조각하는 등 아주 화려합니다.
무학대사비 내용에 의하면 1407년 이 부도가 만들어 졌는데, 조선 전기 뛰어난 조각 수법을 볼 수 있습니다.
무학대사의 석등도 그냥 석등이 아니군요.
사자 두 마리가 등을 받치고 있는 쌍사자 석등입니다. 어흥! 태조의 왕사였던 무학대사의 권세가 느껴지는 부도와 석등이었습니다.
무학대사비와 비 왼쪽(현재 사진에서 바라보는 방향)에 있는 것은 최초의 비석에 사용되었던 석재입니다.
무학대사비는 태종10년(1410년)에 왕명에 따라 변계량이 글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821년 인위적으로 비가 파괴되어 1828년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삼대화상(三大和尙)이라 불리는 위대한 세 명의 승려,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가 잠들어 있는 곳, 회암사.
지금은 비록 그때의 권세를 떨쳤던 화려했던 회암사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걸출한 세 분(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이 여기에 잠들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암사라는 절이 얼마나 권위있고, 권세가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세 분의 기운을 받고 다시 박물관을 보러 총총총 내려습니다. 양주에 가신다면 꼭 들러 보시길 바랍니다.
출처 : 문화재 안내판, 아래 링크
양주 회암사지 <<링크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링크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링크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 탑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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