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를 주름잡던 에이스가 미국야구판으로 가서 실패를 경험하는 장면을 바라봐야 하는 내 속내는 양현종을 응원하는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몹시도 쓰리다.
그는 진출과정이 류현진이나 김광현과는 사뭇 달랐으니 같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저 둘은 80미터 지점에서 출발했다면 양은 후방으로 떠밀려 150미터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는 처지였다.
일찌감치 진출해 메이저리그서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어엿이 소속 구단을 대표하는 제일 선발 에이스로 자리잡은 류현진이나 그토록 고대한 꿈을 작년에야 비로소 이룬 김광현은 몇 경기 내리 터지더라도 다음 기회가 주어지지만 양은 아예 자격요건이 현격히 달라서 단 한 번의 실투나 단 한 경기의 난타는 언제나 마이너리그로 쫓겨나거나 방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류와 김은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예컨대 마이너리그행도 본인이 거부하는 권리가 있지만 양은 애초 계약 자체가 마이너리그였고 mlb 진입시 그에 따른 보너스를 받은 이른바 스플릿 계약이었다.
간단히 말해 류와 김은 저짝에서 모셔간 데 견주어 양은 본인이 갖은 불리를 감수하면서 본인이 자청한 비집고 들어가기 진출이었다.
출발은 그런 대로 좋았고 여건도 그의 편처럼 보였다. 마침내 빅리그로 입성한 그는 애초엔 두어 경기 선발투수나 마찬가지인 롱 릴리프로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인 데다 부상과 부진으로 선발진이 빵꾸나자 그 자리를 마침내 꿰차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리 주어진 기회를 그는 살리지 못했다. 두 번인가 연속 선발 등판에서 초반에 난타당하고선 강판당하더니 기어이 선발자리도 잃어버리고 도로 백업으로 갔으니 이미 의욕 상실한 그가 구원에서도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그 쓰린 속내로 지금 양현종 본인 만한 이 있겠는가? 한국프로야구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다른 둘이 착근한 모습에 대비해서 나는 왜 이런가 하는 자책도 없지 않았을 것이며 무엇보다 여기서 한 발짝 삐끗하면 끝이라는 절박이 그를 더 위축케 하지 않았겠는가?
여러 여건이 결국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는 않았다.
마이너리그행을 통보한지 하룻만에 실상 방출을 통보한 구단이 야속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냉혹한 프로의 세계다.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걸을지 알 순 없지만 미국에서 다시 기회를 잡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견 지금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해서 나는 그가 갖춘 능력과 실력이 메이저리그급이 아니란 말을 동의할 수 없다.
그는 분명 대한민국 최고투수다. 여건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그가 걷는 길을 보면서 이십삼십년 전인가? LG를 떠나 미국서 꿈을 이뤄보겠다며 방랑생활을 하고는 귀국한 이상훈인가 하는 투수가 자꾸만 오버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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