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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능산리 사지 이른바 추정 공방지 백제금동향로 출토 장면이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노출 등을 조정해 보니 야간 발굴이었음이 더욱 명백해진다.
후래시를 썼던 것이다.
졸저에 정리했듯이 지금 세종문화재연구원 실장으로 있는 진성섭선생과 지금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단장 차순철 선생이 맨손으로 엄동설한에 야간에 팠다.
저 사진은 진 선생이 찍었다.
발굴 직후엔 금박이 비교적 완연했으나 부여박물관으로 옮긴 직후 뜨거운 물을 퍼부어 씻을 적에 금박이 많이 흘려내렸다는 후문도 있다.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한 엄동설한 야간발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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