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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와 논산을 연결하는 도로는 식민지시대 개설되었다.
이 부여논산가도는 백제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결정타였거니와 이 도로 개설을 즈음해 비로소 부여 나성이 속살을 드러냈다.
나아가 가도가 지나는 근처를 따라 백제고분이 밀집한다는 사실도 비로소 드러났으니,
능산리 고분군이 문화재로 재발견된 것으로 이때였고, 그 인근 다른 고분군들도 이때서야 존재를 드러냈다.
언제 짬이 나면 이 가도의 역사 자체를 정리하픈 생각도 굴뚝처럼 솟아난다.
하지만 지난 1년, 하도 능산리에 질린 까닭에 당분간은 숨고르기가 필요할 듯하다.
첨부 유리건판 사진은 틀림없이 그 가도가 통과하면서 절개한 나성 동문, 능산리사지 인접 지점인 듯한데, 자신은 없다. (2017.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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