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유재원 선생님께서 소하그Sohag에 서 있는 람세스 2세 딸의 입상이 이집트에서 보신 여인상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딸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현대의 이집트학자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럽게도 고대 이집트의 왕실에는 근친혼이 일상이었으며 유명한 파라오들은 자신의 딸과도 혼인관계를 맺었습니다.
신왕국시대 제19 왕조 람세스 2세(Ramesses II: 기원전 1279-1213년) 치세에 공주에서 대왕비가 된 인물은 빈트아나트 1세(Bintanath I)·메리트아문(Meritamun)·네베트타위(Nebettawy), 이렇게 최소 3명입니다.
이들 중 소하그의 람세스 2세 신전에 서 있는 인물상 주인은 바로 메리트아문입니다.
그렇다면 소하그는 어디일까요? 아마도 페친 여러분들 대부분은 이 이름을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소하그는 수도 카이로(Cairo)에서 남쪽으로 약 390킬로미터, 룩소르(Luxor) 시에서 북쪽으로 약 23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부 이집트의 작은 도시입니다.
[소하그 지도]
콥트 교회(Coptic Church) 교세가 여전히 강한 곳이라 많은 콥트 기독교도가 거주하며 콥트 교회 대표 건축물인 “적색 수도원”(Red Monastery)과 “백색 수도원”(White Monastery)이 특히 유명합니다.
아랍어로 الدير الاحمر “데이르 알-아흐마르”(Deir al-Ahmar)라고 불리는 적색 수도원은 내부 성화 중 80%가 보존돼 당시 웅장했던 교회 모습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아래 관련 링크 (1) 참조).
일부 방문객은 이 수도원의 장엄하고 화려한 내부장식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소재한 아야 소피아(Hagia Sophia Grand Mosque)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고 평가합니다.
“적색 수도원”이라는 명칭이 햇볕에 붉게 그을린 건물 외부 벽돌에서 파생되었다면, 아랍어로 الدير أبيض “데이르 알-아비아드(Deir al-Abyad)라고 불리는 백색 수도원은 파라오 시대 백색 석회암을 재활용하여 지었기에 이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전성기 때는 이집트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보유하기도 했지만 아랍 지배기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에는 약 20명 콥트 수도사만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일강 서안에 위치한 소하그 맞은편 동안에는 아크민(Akhmin)이라는 도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이푸(Ipu) 혹은 켄트메누(Khentmenu)로 일컬은 아크민 주신은 땅의 풍요를 주관하는 민(Min)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을 야생의 신인 판(Pan)과 동일시했기에 그리스 지배기(기원전 332-30년) 이후 이 도시 이름은 "판의 도시"를 의미하는 파노폴리스(Panopolis)가 되었습니다.
이집트 전역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건축왕 람세스 2세는 이곳에도 신전을 건립했는데 앞서 언급한 메리트아문 거상은 바로 이 신전에 조성된 것입니다.
높이 13미터로 현존하는 고대 이집트 여인상 중에서는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메리트아문 거상은 우레우스(uraeus)를 촘촘히 두른 원통형 관(modius) 위에 신성(神性)을 상징하는 두 개 깃털이 높이 솟은 관을 쓰고 한 손에는 식물 줄기를 쥔 모습입니다(아래 사진 참조).
한편, 1896년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고고학자 플린더스 피트리(William Matthew Flinders Petrie: 1853-1942년)가 룩소르 시 서안에 위치한 람세스 2세의 장제전(葬祭殿, mortuary temple)인 라메세움(Ramesseum)에서 한동안 “흰색 피부의 왕비”(White Queen)라고 이름 붙은 인물상을 발굴했는데(아래 관련 링크 (2) 참조),
1981년 독일 고고학회(DAIK: Deutsches Archäologisches Institut Abteilung Kairo)가 메리트아문 거상을 발굴하면서 이 두 인물상이 동일한 인물, 즉 메리트아문을 묘사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관련 링크 (2) : https://egymonuments.gov.eg/collections/statue-of-meritamun-the-white-queen/?fbclid=IwAR0gjmOPOhQgB5Evszerh1CjuERrmFfLBi47bqGvXoVvfXNMEpHg-hHxgqA
1995년부터 야외 박물관으로 지정된 이 신전에서 메리트아문 거상을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아름다운 여인상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고 합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집트 속살을 체험하고 싶으신 여러분께 소하그와 아크민을 방문해 보시라 권해 드립니다.
#소하그 #아크민 #메리트아문 #람세스_2세 #적색_수도원 #백색_수도원
*** Editor's Note ***
유 박사가 모호하게 처리한 대목이 있으니, 공주에서 대왕비가 된 인물 이라는 표현도 개중 하나라, 이는 람세스2세가 왕비로 맞아들인 자기 딸이라는 뜻이다.
고대 이집트 극심한 근친혼 양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유 박사께 따로 글을 부탁드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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