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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없시유, 휴전선에 있겄지유

by taeshik.kim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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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없는 서산버드랜드. 닭장에 외래닭 몇 마리만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이었다. 흑두루미라는 놈들이 천수만에 그득그득하다며, 그 화려찬란한 광경을 어느 공중파 방송 메인뉴스에서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보면서 영 낌새가 이상하긴 했다. 논이기는 했는데, 그것을 전하는 기자 등때기 바로 뒤로 흑두루미가 버글버글하니 사람 신경도 쓰지 않고 쳐먹어대는 꼴을 보면서 아 저거 연출인데,

어느 지자체에서 일부러 논바닥에다가 곡물 잔뜩 뿌려주고 연출한 건데 하는 상념이 스치지 아니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 천수만 가면 암데서나 논바닥에 혹 저런 흑두루미떼 볼 수 있지 아니할까 하는 일말하는 기대를 품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이전에 약속한 대학 동창 둘과 어디로 바람 쐬러 가자 해서 몇 군데를 제안했더니, 태안을 가자는 데로 의견이 모아져 그쪽으로 행차길을 잡아 아침에 서울을 출발했다.

마침 그곳을 지역구로 삼은 이번 총선에서 친구놈 조한기가 서산 태안 쪽에 다시 출마를 했으니, 그런 인연도 없지는 않았다 해 둔다. 
 

조난당해 치료 중이라는 어떤 맹수놈. 티미하니 넋이 나갔다.

 
선거운동으로 바쁜 놈, 부러 연락은 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다녀왔다. 다만 들르는 가게 카페마다 이런 놈이 있으니 긍휼히 여겨주십사 하는 부탁은 하기는 했지마는 혹 그것이 아니라 해도 조한기 찍어주려다 반발심에 외려 돌아서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긴 뭐 나 같은 놈이 조한기 찍어주세요 해서 안 찍을 마음이었는데 찍어줄 사람이 있겠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저런 놈 없다.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나 크리미널 마인드가 없는 녀석이다. 

각설하고, 천수만을 갔다. 혹 흑두루미 만날 일 있을까 하고선 그 무거분 600미리 망원렌즈도 싣고 갔다.

한데 아다시피 천수만이 오죽 넓어야지? 대체 이곳 어디에 흑두루미가 있단 말인가?

간월암 가는 길 저짝에 서산버드랜드라고 보인다. 그래 저짝에서는 뭔가는 알고 있겠지, 혹 아나? 저짝에서 이번 공작을 시도했는지?

평일이라서인지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 다행히 조금 어슬렁거리는데 언뜻 직원인 듯한, 하지만 어쩐지 가만 살피니 그렇지도 아니한 이곳 주민인 듯한 부부로 보이는 듯한 중년 남녀가 나온다. 

"이짝에 흑두루미 잔뜩 있다 해서 왔는데 안보이여? 어데 있어여?"

잠깐 이상한 듯 나를 바라보더니 하는 말.

"없시유"

"있다했는데?"

"어디 휴전선에 있겄지유. 휴전선으로 가보시유."
 

어째 계속 빙빙 돌더라니. 집 지킨다고 난리를 쳐댔다.

 
이런 황당함이라니?

화딱지 나서 창구 직원한테 물었다. 

"흑두루미 어딨어요?"

"없어요. 3월 17일까지 한달 동안 먹이주면서 붙잡아 놓은 거구요. 좀 있음 북쪽으로 다 날아가요. 먹이 주어서 일부러 붙잡아 놓은 겁니다."

자연? 웃기는 소리 하네. 인간 손길 타지 않으면, 지들도 재간이 없다.

산양? 내 전직 공장 보도 보니 이번 폭설에 산양이 다 자빠져 떼죽음 당하거나 조난당했다고 그거 치우고 구하러 다니느라 사람들이 생똥을 싼단다. 

가만 두라면서? 왜 이럴 땐 가만두라 하면서 저럴 때 가만두어선 안된다 하는 거임? 

죽든말든 지들 맘대로 하게 가만두어야 하는 게 아님? 
 

새똥 안 맞은 게 다행이다.

 
암튼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버글버글하다는 흑두루미는 구경도 하지 못한 채, 농로 시멘트도로 달리며 새를 찾는데,

그 넓은 들판 연못 한 켠에 청둥오리 몇 마리, 왜가리 백로 몇 마리만 덩그러니 차를 보더니 쏜살같이 도망치고 만다. 

흑두루미 어디간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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