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꿀보다 탁한 것이 없는데도 ‘청(淸)’이라 부르니 청탁(淸濁)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이미 죽은 꿩인데도 ‘생치(生雉)’라 하니 생사(生死)를 모르는 것이다.
전복이 애초 이지러진 데가 없는데도 ‘전복(全鰒)’이라 하니 군더더기 말이요, 기름과 꿀을 묻혀 튀긴 밀가루 반죽을 ‘약과(藥果)’라 하니 본디 약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일도 아니다. 꿀에 담근 과일을 ‘정과(正果)’라 하는데 그렇다면 꿀에 담그지 않은 것은 사과(邪果)인가?
문을 잠그는 자물쇠를 ‘쇠[金]’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인들 쇠가 아니겠는가. 불에 달군 낫도 ‘철(鐵)’이라 하고 말발굽에 박는 징도 ‘철’이라 하고 지남철도 ‘철’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인들 철이 아니겠는가.
밀랍으로 만든 초를 ‘황촉(黃燭)’이라 하는 것은 재질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라 색깔을 지적해 말한 것이니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동물 기름으로 만든 초를 ‘육촉(肉燭)’이라 하는데 기름이 비록 고기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육(肉)’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두꺼운 종이를 ‘장지(壯紙)’라 하는데 두꺼운 것일 뿐 건장한 것은 아니다.
기름을 먹인 종이를 ‘유둔(油芚)’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뜻이 닿지 않는다.
소고기를 ‘황육(黃肉)’이라 하는데 고기의 색으로 말하자면 노랗지 않고 소의 색으로 말하자면 검은 소도 있다.
해조류를 ‘곽(藿)’이라고만 하는데 여곽(藜藿)ㆍ규곽(葵藿)의 곽인가, 곽향(藿香)의 곽인가, 음양곽(淫羊藿)의 곽인가?
깃발을 다는 장대를 ‘깃대[旗竹]’라고 하고 창 자루를 창대[槍竹]라고 하는데 나무로 만드는데도 ‘대[竹]’라고 하니 옳지 않다.
면으로 짠 베를 ‘목(木)’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심는 면화는 초면(草綿)인데 목면(木綿)으로 오인한 것이니 벌써 잘못이고, 또 달랑 ‘목(木)’이라고만 하니 누가 그것이 면으로 짠 베를 가리키는 말인 줄을 알겠는가.
밀가루를 ‘진말(眞末 밀가루)’이라 하고 참깨 기름을 ‘진유(眞油 참기름)’라 하고 준치를 ‘진어(眞魚)’라 하는데 무엇이 거짓 가루며 무엇이 거짓 기름이며 무엇이 거짓 고기일까?
속어를 이루 다 바룰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학사 대부들이 애초 명물(名物)에 관심을 두지 않고 모두 서리에게 맡겨 장부에 적게 하고 결국에는 편지에서까지 그 이름을 사용하니, 물건에서 바른 이름을 볼 수가 없다.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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