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를 표방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김영삼은 집권 초반기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벌였으니, 내 기억에 80~90%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대중독재였으니, 하나회 척결과 전두환 노태우 처단, 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 실시 등등 단군조선 이래 있을 만한 개벽이라는 개벽은 단기간에 이룩했다.
이런 그를 무너뜨리고 나중에는 기어이 나라 전체를 IMF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외환위기로 허망하게 끝나게 한 여러 동인 중 하나로 초대형 사건사고 빈발이라는 악재가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듯 싶다. 걸핏하면 수십명, 때로는 수백명을 헤아리는 그런 사건사고가 잇따랐으니, YS로서도 미칠 노릇이었던 게 그런 사건사고가 어찌 그의 직접 책임일 수가 있겠는가?
예서 관건은 그것이 빈발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그의 재임 시절이었다는 점 딱 하나뿐이다. 1993년에 시작해 98년에 끝난 그의 집권시기 대형 사건사고 일람을 보면, 우선 집권 직후인 1993년 3월 27일 발발한 구포역 열차 전복사고를 시발로 마침내 1995년 6월 29일는 서울 강남땅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면서 500명에 달하는 초초대형 기네스북에나 오를 대형 사고로 정점을 구가했다. 기타 주요 사건사고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93년 6월 10일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 사망자 20명
1993년 7월 26일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 사망자 68명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침몰 - 사망자 292명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 사망자 32명, 부상자 17명
1994년 10월 24일 충주호 유람선 화재 - 사망자 25명, 부상자 33명, 실종자 1명
1994년 12월 7일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 사망자 12명, 부상자 101명, 건물 145채 파손
1995년 4월 28일 대구지하철 가스폭발 - 사망자 101명, 부상자 202명, 건물 346채 파손
1995년 8월 23일 경기여자기술학교 화재 - 사망자 37명. 부상자 16명
1997년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 - 사망자 228명, 부상자 26명
집권 초창기에야 저런 사건사고도 그의 집권과 맞물리지는 아니했지만, 그것이 켜켜이 쌓이면서 여론도 점점 돌아서기 시작했으니, 동아시아 전통적인 군주 책임론과도 무관치 않다. 특히 삼풍백화점 사고는 그의 고공 인기행진이 끝났음을 알리는 서글픈 신호탄이었다.
저 백화점이 붕괴되기 전까진 나는 강남에 저런 백화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상경 이후 내 생활기반이 강북이 기반이 된 까닭도 있겠고, 내가 이쪽으로 행차할 일 역시 전무했던 까닭이다. 그런 백화점이 붕괴했다는 소식을 나는 당시 체육부 기자로 있을 적에 접한 까닭에 그 직접적 체감성은 약할 수밖에 없다. 시시각각 생방송으로 전하는 사고 소식이야 다시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내가 체육부를 떠나 사회부로 간 96년만 해도 그 여진이랄까 하는 흔적이 사회부 경찰팀에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번주 [순간포착]이 포착한 저 기사에는 언급되지 아니했는데, 이 사고와 관련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최명석과 박승현이라는 두 장기 생환자다. 찾아보니 최씨는 9일, 박씨는 17일 만에 사고현장 잔해 더미에서 구조됐거니와 이들은 생환 이후 여러 언론매체에 등장하면서 스타급 대접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요새 근황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 외에도 유지환 씨라는 사람이 11일 만에 구조되기도 했으니, 아무튼 나한테는 저 두 사람이 무척이나 각인한다.
모든 사고가 으레 그렇듯이 이 역시 인재라는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고, 그네들이 제시한 각종 사고 직전 징후들을 보면 어이없는 인재는 부인할 수 없다. 이럴 때면 언제나 그 업주와 담당 공무원이 처벌받기 마련이거니와 그 회장 이준과 그의 아들이자 사장인 이한상, 뇌물로 불법 설계 변경을 승인해줬다는 혐의로 이충우 전 서초구청장 등이 감옥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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