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이 실시한 용인 보라동 산 62-2번지 백제고분 발굴성과 소식을 전했으니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세기 백제무덤들
아래는 그 성과를 집적한
한국문화유산연구원 학술자문회의 자료 제2023 - 5호
용인 보라동 62-2번지 백제고분 유적
- 학술자문회의 -
자료를 토대로 이번 발굴성과를 다시금 정리하거니와, 중요 도판은 앞선 소식에서 이미 다 까발렸으니 그걸로 가늠하되,
지금 추보 형태로 전하는 소식에서 중요한 두 도판은 아래라 이것만으로 이번 성과는 다라고 보면 된다.
이 도면을 보면 무덤 배치 양상을 확연히 본다.
조사단은 이들 무덤 만든 시기를 4세기 이후 한성시대로 봤는데, 이 무렵에는 아직 한반도가 완연한 중국식 사고 관념이 지배하기 전이라, 그럼에도 그것이 침투하기 시작한 흔적으로 엿보게 되는데 바로 무덤 장축 방향 때문이다.
이걸 보면 1호와 2호 석곽묘는 완연한 중국식 묘제를 흉내내려 한 흔적이 농밀하다. 다시 말해 무덤 장축을 남북 방향으로 마련하되, 머리 방향을 북쪽을 두는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여타 무덤은 이와는 다른 배치를 보이니, 나는 이를 착종이라 본다.
뭐 이리 말해도 알아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다만, 내 추정 맞다!
이는 이 무렵 시루를 보면 확연하다.
시루랑 중국 관념 침투가 무슨 관계나 묻겠지만, 시루 바닥 구멍을 잘 봐야 한다.
내가 살피니 삼국 공히 시루 바닥 구멍이 완연히 음양오행설을 따르기 시작하는 시기는 대략 4세기를 기점으로 삼는다.
간단히 말해 4세기 이전 시루 바닥 구멍 숫자는 의미가 없다. 지 맘대로 뚫고 싶은 숫자만큼 뚫는다.
하지만 이 시기를 지나면 완연한 정형성을 갖춘다.
믿기지 않는다고? 그럼 살펴 봐!!!
이 무덤 장축은 바로 그 시루에서 확인하는 그 양상과 똑같다.
이것이 이번에 확인한 무덤 5기 신상표다.
조사단은 이번 성과를 다음 여섯 가지로 축약한다.
이번 학술발굴조는 (사)한국문화유산협회에서 공모한 2023년 매장문화재 학술발굴조사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발굴조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사대상지(면적:208㎡)는 2022년 지표조사를 통해 보고된 ‘용인 공세동 유물산포지2’ 로 보라산(해발 215m)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능선의 해발 155∼156m 내외의 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2.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백제한성기) 석곽묘 5기가 확인되었다. 부장유물은 단경호, 직구호, 단경소호, 직구대부호, 방추차 등의 토기류와 철모, 철부, 철도자, 철겸, 철촉 등의 철기류, 구슬 등의 유리옥석류가 출토되었다.
3. 석곽묘의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 방향으로 조성되었다. 석곽묘는 수혈식 석곽 묘로 축조방식은 두향 방면의 단벽 유무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두향 방면 단벽을 석축하지 않고 굴착면을 그대로 이용한 석곽묘 2기, 두향 방면 단벽을 석축으로 조성한 석곽묘 1기, 두향 방면 단벽을 굴착면과 석축을 모두 이용하여 조성한 것 2기이다.
4. 유물의 출토위치는 두상 쪽과 발치 아래, 내부 중앙으로 다양하다. 두상 쪽에서 확인되는 석곽묘는 2호·5호 석곽묘이며, 내부 중앙에서 확인되는 석곽묘는 3호 석곽묘이다. 세 위치 모두에서 확인되는 석곽묘는 4호 석곽묘이다.
5. 유적에서 출토된 단경호와 직구호, 단경소호는 백제한성기를 대표하는 기종으로 수량이 적어 세부적인 시기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나 ‘용인 공세리 유적’과 ‘용인 공세 동 제1∼2종 근린생화시설부지 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비교 검토해 보았을 때, 석곽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종과 형태, 소성도로 보아 시기 편차는 있으나 4~5세기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6. 조사지역의 서쪽으로 약 400m 가량 이격되어 용인 공세리 유적이 위치하고 있으며, 조사지역의 남쪽으로 용인 공세동 제1∼2종 근린생활시설부지 내 유적이 연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이번 조사를 포함하여 현재 보라산에서 확인된 백제한성기 고분은 공세리 유적 3기(석곽묘), 용인 공세동 제1∼2종 근린생화시설부지 내 유적 46기(석실묘 1기·석곽묘 24기·(주구)토광묘 20기·옹관묘 1기)로 모두 54기이다. 이처럼 보라산은 백제한성기에 대형의 고분군으로 이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
이 발굴은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이 한문협에다가 발굴조사비를 신청해 받은 돈이 밑거름이라 현남주 원장한테 문의한 결과
이번 조사를 위해
한문협 지원금 81,830,000원이 들어가고 연구원 자체 부담금 9,900,000원을 보탰다고 한다. 모자라는 예산으로 고생한 연구원, 조사비를 지원한 한문협, 그리고 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용인시가 참말로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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