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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용인 석성산 금수암(金水庵)터를 찾아서

by 서현99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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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용인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 <용인의 역사와 삼국시대 문화유적 학술대회>를 오늘(2021. 6. 4.)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님의 ‘고고유적을 통해 본 삼국시대 용인지역’기조발표를 시작으로, 김도훈 혜안문화재연구원장님이 ‘용인지역 삼국시대 분묘의 변천양상과 지역성에 관한 연구’에 대해, 이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연구부장님이 ‘용인 석성산성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이형원 한신대학교 교수님이 ‘용인지역 삼국시대 주거문화’에 대해 주제 발표를 진행했다.

사실, 이 학술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석성산성을 주목해 보고 싶었다.

할미산성에서 바라 본 석성산 전경


일제강점기 1910년대 수치지형도, 석성산 정상에 석성산성이 보인다. 북쪽으로 백현을 넘어 있는 것은 할미산성이다.


할미산성과 관련해서 반드시 연관성이 언급되기도 하거니와, 정상에 군부대로 인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도에 비지정문화재 발굴조사 지원사업으로 동문지 부근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기도 했었지만,
지정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후 후속조사와 전체 현황 파악이 쉽지 않았다.

마침,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내부를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5월 12일,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의 이상국 부장님과 혜안문화재연구원의 김도훈 원장님과 함께 석성산성 서벽구간에 대한 GPS 측량과 사진촬영, 도면 작성 등의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석성산성 조사중인 이상국 선생님
석성산성 조사중인 김도훈 원장님



그 결과, 문헌자료 및 기존 지표조사의 성벽둘레 길이와 달리 성벽 둘레 1,816m의 값을 얻었다.


그리고 서성벽 구간에서 그간 확인되지 않았던 적대(敵臺)로 추정되는 시설을 확인하였고, 통일신라 시대 이전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성벽과 유물들을 확인하였다.

석성산성 서성벽 구간중, 할미산성과 유사한 쌓기방식을 보인다.
지표수습 기와편



그리고 서쪽으로 돌출된 능선상에서 길이 40m, 너비 13m 범위에 걸쳐 형성된 평탄면이 돌출된 치성으로 통하는 용도(甬道)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곳에서는 주춧돌로 보이는 석재와 무너져 내린 석축기단의 모습이 관찰되었으며, ‘卍’자와 연화문이 찍힌 기와 1점을 수습하였다.

만자명 기와(발견자 : 이서현)



1842년 간행된 『京畿誌』와 1871년 간행된 『龍仁縣邑誌』에 보개산 금수암(金水庵)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지형과 석축기단 그리고 수습유물을 종합하여 살펴 볼 때 금수암과 관련한 건물지가 이곳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석성산에서 사찰과 관련된 유물이 수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아직까지 추정 단계이지만 기와 발견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덧, 늘 조사에 도움주시는 두 분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석성산에서 바라 본 건지산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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