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34)
기해잡시(己亥雜詩) 220
[淸] 공자진(龔自珍) / 김영문 選譯評
온 세상의 생기는
폭풍 우레에 기대는데
말떼는 모두 침묵
서글픈 세상일세
하느님께 권하노니
다시 힘을 떨치시어
한 격식만 구애 말고
두루 인재 내리소서
九州生氣恃風雷, 萬馬齊喑究可哀. 我勸天公重抖擻, 不拘一格降人才.
중국에서 근대를 거론할 때는 반드시 공자진에게서 시작한다. 그런데 공자진은 중국 근대의 시작이라고 하는 아편전쟁(1840) 한 해 뒤(1841)에 죽었다. 이렇게 보면 공자진은 최후의 고대인이면서 최초의 근대인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는 유명한 문자학자 단옥재(段玉裁)의 외손자로, 청나라 말기에 유행한 공양학(公羊學)의 입장에 서서 중국 자체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사회를 열망했다. 우리나라의 성호 이익이나 다산 정약용에 비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흥미롭게도 공양학은 공자를 현실개혁론자로 인식하면서 거란(據亂)→승평(昇平)→태평(太平)으로 진화하는 미래지향적 세계를 상정한다. 이후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손문(孫文), 진독수(陳獨秀), 노신(魯迅), 모택동(毛澤東) 등 중국 근대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쉽게 서구 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 바로 공양학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저작을 읽어보면 오천년 중국 왕조의 쇠망에 대한 예감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 내면 깊숙이 스며 있다. 문학으로서 그의 대표작은 바로 『기해잡시(己亥雜詩)』다.
『기해잡시』는 모두 칠언4구 315수로 이루어진 연작시다. 여기에는 근체시의 격률에 맞는 칠언절구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지만, 절구가 아닌 칠언 고풍 형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짧은 형식의 시(칠언4구)를 연작시 형태로 315수나 연이어 창작한 것은 중국 전체 문학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다. 당시 청나라 말기의 세상은 아무 움직임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강산 그 자체였다.
비루먹은 말떼만 세상을 기웃거리는데 하늘 향해 포효하는 천리마는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뜨거운 열망과 포부도 모두 꺾인 채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는 공자진이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제 하늘을 향한 기원밖에 없었다.
부디 형식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인재를 내려주시옵기를... 공자진의 비나리가 영험을 발휘한 것일까?
이후 중국 근현대에는 실로 무수한 인재가 출현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찬란하게 장식했다. 올해는 그가 『기해잡시』를 읊은 이후 세 번째 맞는 기해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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