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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월남, 중동, 독일 그리고 청일전쟁

by 초야잠필 2023.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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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를 거치고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남은 재산 다 말아 먹은 

말 그대로 국제거지 신세였던 한국이 겪은 가장 큰 문제는 근대화를 시작하려해도 종자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당장 먹고 살것도 없어 밀가루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무슨 돈이 있겠는가.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과정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일본이 근대화를 시작한 메이지유신 이후의 19세기 후반은 

일본이 서구를 따라잡기에 힘이 부치기는 했지만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일본은 한푼이라도 정부에서 아껴 필요한 부분을 하고, 별의 별 짓을 다 했지만 그래도 만년 적자에 

가장 중요한 산업혁명은 19세기 후반까지도 시작 못하고 있었다. 

돈이 있어야 시작할 것 아닌가? 

이 고민을 일거에 해결한 것이 바로 청일전쟁이었다. 

일본이 20세기 초반 산업혁명에 비로소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청일전쟁의 배상금

그리고 1차대전 후 부흥기에 벌어들인 막대한 무역 흑자였다. 

이 두 가지로 일본은 근대화 이후 축적되어왔던 적자를 일거에 해결하고 

명실상부한 제국주의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엇다. 

한국은 45년 독립 후에 

이른바 국제거지로서 돈 나올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처럼 청일전쟁 배상금을 얻을 수 있는 제국주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그래서 한푼이라도 그 종잣돈을 만들겠다고 한 시도가, 

바로 대일배상금, 월남전참전, 중동 건설, 그리고 독일광부다. 

대일배상금, 월남전, 중동. 물론 욕하기는 쉬운데

그럼 그때 이 방법 외에 종자돈을 어떻게 조달했어야 하는가, 그 대안을 내놔야 하는게 아니겠는가? 

소위 자력갱생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것은 휴전선 이북에서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동건설, 독일광부보다 대일배상금, 월남전 문제는 유독 좌우간 의견차가 첨예한 사안인데, 

이 사안에 대해서는 당시 한국의 선택이 윤리적으로 욕을 먹을 문제가 있다면 먹더라도 

이 두 가지가 없었으면 한국의 근대화는 시작도 못했고 진행도 못했다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청일전쟁은 한국사에서는 이미 제국주의국가가 되어버린 일본이 조선을 삼키기 위한 일대 전쟁으로만 묘사하지만 사실 당시 제국주의를 지향하던 일본은 청일전쟁 이전 만성 적자상태에 돈이 없어 산업혁명은 시작도 못한 상태였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것이 바로 청일전쟁후 배상금이다. 이 배상금으로 일본은 파산위기에서 벗어났고 이후 1차대전의 복구과정에서 전세계에 흑자무역을 전개하면서 제국주의국가로 올라섰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은 청일전쟁 배상금이 생길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그 종자돈은 어디서 와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마련하지 못하면 대일배상금문제에 대한 비판은 천가지 비판도 다 소용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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