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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이 소개한 영길리국과 두목관 마알이니·시당동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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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는 실제는 호리호리한데 이런 식으로 탐욕스런 김정은 스타일로 당시 서구사회에 소개됐다. 매카트니가 알현하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영길리국[영咭唎國]

계축년(1793, 정조17) 연경에 사신으로 간 뇌자관賚咨官의 수본手本이다.

"영길리국暎咭唎國(잉글랜드)은 광동의 남쪽 해외에 있는데, 건륭 28년(1763, 영조39)에 조공을 바치고 금년에 또 조공을 바쳤습니다. 두목관頭目官은 마알이니碼戞이呢와 시당동嘶噹㖦 두 사람인데 그 나라 국왕의 친척입니다. 일행이 모두 724명인데 그중 100명은 경사京師에 왔다가 이어 열하熱河로 갔고, 나머지는 천진부天津府에 머물렀습니다. 진공물進貢物은 19종으로서 제작이 기이하고 정교하여 서양 사람이 따를 수 없을 정도입니다. 9월 초에 천진의 해로를 따라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상고해 보건대 이들은 곧 홍모이紅毛夷[털이 붉은 오랑캐-인용자]로서 왜倭가 길리시단吉利是段(크리스천)이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건륭제 알현하는 장면 

 

주석 : 

뇌자관의 수본 : 뇌자관은 재자관齋咨官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에 중국에 자문咨文을 가지고 가는 임시 벼슬아치를 말한다. 이 뇌자관의 수본手本은 《일성록》 정조 17년 10월 26일 기사에 보인다.

마알이니와 시당동 : 마알이니는 매카트니(George Macartney, 1737~1806), 시당동嘶噹㖦은 스탠턴(George L. Staunton, 1737~1801)을 말한다. 모두 영국인이다. 매카트니는 영국 대사로서 영국에서 청나라에 보낸 최초의 사절단을 이끌었으며 스탠턴은 이를 보좌하였다.

 

매카트니 

 

Sir George Staunton, 1st Baronet. 그는 동인도회사 직원이었고 식물학자였다. 



*** 이상은 유득공柳得恭(1748~1807) 지음, 김윤조·김성태·김성애 옮김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권5. 한국고전번역원, 2020.12, 390쪽에 의한다. 

영길리국[영咭唎國]에서 영은 映에서 日 대신 口를 쓴 글자, 곧 口+央인데 지원이 되지 않으며, 마알이니碼戞이呢의 '이'는 口+厼 라는 글자인데 역시 지원되지 않는다. 

 

정조실록 17년 계축(1793, 건륭 58) 10월 26일(병술)에 의하면 이런 내용을 치계한 사람은 의주 부윤義州府尹 이의직李義直이며, 그가 인용한 수본手本은 헌서憲書 재자관齎咨官 홍택복洪宅福이 작성한 것이다. 이 정조실록을 보면 두 사람에 대한 부분을 頭目官嗎戞𠶀呢嘶噹㖦二人이라 했거니와, 이를 현재 제공하는 표점본을 보면 頭目官嗎戞𠶀、呢嘶噹㖦二人이라 해서 嗎戞𠶀 / 呢嘶噹㖦 두 사람으로 끊었지만, 이는 이번 번역이 제시한 嗎戞𠶀呢 / 嘶噹㖦이 맞다. 

 

이 그림이 실제 건륭제에는 가깝다. 

 

두목관頭目官이란 우두머리 오야붕 이란 뜻이다. 

 

당시 영국이 중국에 조공했을 리는 없고 무역을 위해 통상사절단을 파견한 데 지나지 않으니, 이를 콧대 높은 중국 중화주의는 조공이라 표현했으며, 이런 인식을 조선에서 그대로 이식함을 본다. 이런 꼬라지는 지금의 북한 매체가 서구사회 혹은 남한을 다루는 방식, 나아가 일본서기가 한반도를 기술하는 방식의 딱 그것이다.

 

덧붙여 이 일은 영국이라는 존재가 조선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신호탄이다.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닐 것이지만 말이다. 

 

조선과 영길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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