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행장行狀이니 시장諡狀이니 해서 죽은 사람 행적을 정리한 글은 초고와 완성본이 따로 있어, 초고는 대개 그 아들이나 손자 같은 직계 후손이 쓰고, 그것을 토대로 삼아 대개 그 시대 글이 뛰어나다고 간주하는 사람이 감수를 보아 완성한다. 물론 이런 행장이나 시장은 이 감수를 한 사람이 저자로 남는다.
대개 행장이나 시장은 유족이 써 준대로 최대한 살려주되, 그에다가 자신이 보고 겪은 것들을 적절히 버무리고 보태어 완성하게 되니, 이 유족이 써 준 원고를 지 맘대로 고쳤다가 원수까지 지게 되어 나중에는 사생결단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기도 했으니,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과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이 그 대표라 할 만하다.
둘은 본래 사제지간이라, 그 아버지 윤선거尹宣擧(1610∼1669)가 죽자 윤증은 그 행장을 들고가서 이걸로 우리 아부지 좀 폼나게 살았다 하는 묘갈명墓碣名 한 편 받으려 합니다 스승님, 했지만 이 꼬장꼬장한 늙은이 그 아버지 행적 중에 논란이 좀 있는 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만 윤증을 건드리고 말았으니,
남들이야 그런 불편한 사건은 생략하면 그뿐이지 하겠지만, 이 일은 윤선거 일생에서 피해할 수 없는 사안이었으니, 다름 아니라 병자호란 때 친구와 친척, 부인이 모두 순절했지만 윤선거 혼차만 살아난 일이 있어 이 일을 우암은 비판적으로 논급한 것이다.
그 행장을 받아든 윤증이 부들부들 떨면서 사부사마, 이 대목만은 좀 부드럽게 곤치주여!! 했지만, 우암이 어떤 사람인가? 내 글은 한 글자도 못 고친데이 해서 그만 결별하고 만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小論으로 갈라지는 계기를 마련했으니,
말이 좋아 노론이지, 늙은이 당파라는 뜻이라 당연히 수염 허연 우암을 추앙하는 무리이며, 소론은 청년당이라는 뜻이니 상대적으로 젊은 윤증을 추숭하는 일군을 일컫는다.
쏴리, 내가 이 얘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는데 또 엉뚱한 데로 빠지고 말았다. 본론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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