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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청금록靑衿錄이라 하면 향적, 유적, 향안 등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에 나오는데
그 기원을 따지자면 최소한 조선시대 전기까지도 올라가며
원래는 향촌 사회의 유생의 장부로 단순한 성격의 기록물이었던 것이
조선후기가 되면서 각종 권위와 이권이 섞이면서 성격에 큰 변화플 겪은 것으로 안다.
이 청금록은 호적에 유학이라 기재되어 있더라도
정작 청금록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집안이 많다.
그 동네에서 전통적인 양반의 씨,
유학을 호적에 붙이는 정도로는 들어갈 수 없고,
그래도 우리 정도는 되야 양반이라는 사람들끼리 모여 향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오면 향촌사회에서
이전에도 썼지만 소위 "놀고먹는자들"이 줄줄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임란 이전까지만 해도 극히 소수이던 양반들이
17세기 이후부터 숫자가 점점 늘어나 호적에서 유학으로 등재되는 이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금록, 혹은 향안이란 이런 유학 모칭자들,, 놀고 먹는자들,
스스로 선비라 칭하고 유학이라 칭하면서 군역이나 빠질려고 하는 이들이 아니라
우리야말로 선비이자 양반이라는 생각으로 명부를 추렸기 때문에
이 향안 혹은 청금록에 들어가는 것은 그 동네에서 이 집안은 양반이라 인정받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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