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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외랑(員外郞) 최홍렬(崔洪烈)은 뜻이 굳세고 정직하였다. 일찍이 남경(南京)의 장서기(掌書記)로 있을 적에 권신(權臣)인 의문(義文)이 보낸 종이 주인의 세력을 믿고 멋대로 사람을 해치자 그를 때려 죽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알려졌었다. 그가 하급 관리로 있을 적에, 여럿이 모인 자리에 고을을 다스리는 데 청렴하지 못한 문사(文士) 한 명이 있었다. 최군(崔君)은 자기로 만든 술잔[飮器瓷垸]을 들어 장차 치려 하면서, 먼저 입으로 손가락을 물어 큰 휘파람을 불어서 기운을 격발시킨 다음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이 좌석에 탐욕스러운 놈이 있어 나는 그를 때리려 한다. 옛날 단수실(段秀實)은 홀(笏)로 간신(奸臣)을 쳤었는데 이제 나 최씨는 술잔으로 탐신(貪臣)을 치겠노라.”
라 하였다. 비록 그 이름은 꺼리고 말하지 않았으나 그 사람은 자신의 청렴하지 못함을 깨닫고 몰래 빠져나가 도망쳐 버렸다.
뒤에 이 일을 가지고 최군을 희롱하는 사람이 있으면 최군은 화를 냈으나, 낭중(郎中) 이원로(李元老)가 그를 웃게 하려고 심지어 손가락을 물고 큰 휘파람을 부는 흉내를 내어 보이기까지 하였으나, 최군은 화를 내지 않고 다만 머리를 숙이고 스스로 웃을 뿐이었다. 그것은 이군(李君)과 서로 친하기 때문이었다.
ㅡ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설, "술잔으로 탐신(貪臣)을 친 데 대한 설"
1) 고려시대에는 술잔을 완垸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2) 그 시절에도 입에 손가락을 넣어서 휘익 소리를 냈던가보다.
3) 손 그리기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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