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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제시대의 지식인: [14] 이희승과 [15] 박철재

by 초야잠필 2023.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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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에는 수물과라는 과가 있었다. 수학+물리라서 수물과이다. 

연희전문은 일제시대 당시 "문리대" 성격이 강한데 문과와 수물과 등 후일의 서울대 문리대와 같은 성격의 과들이 이 학교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 중에 수물과 이야기이다. 

이 수물과는 문과처럼 4년제였다. 고보를 졸업하고 입학하였다. 

수물과를 다닌 분 중에 저명한 국어학자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1896~1989)이 있다.

선생 학력 프로필은 아래와 같다 : 

한성외국어학교(1908-1911) - 경성고보-양정의숙-중동학교-중앙학교(1918) - 전문학교입학검정시험(1923)-연희전문 수물과(1923?-1925?) - 경성제대예과 (1925-1927) - 경성제대 본과 (조선어학 및 문학과) (1927-1930)

선생은 경성제대 예과에 들어갈 때까지 프로필이 매우 복잡하다. 

우선 중등학교 과정을 경성고보, 양정, 중동, 중앙 네 군데를 옮겨 다닌 것으로 되어 있는데 최종 학력인 중앙이 정식 고보가 아니었으므로 1923년에 검정시험을 거쳐 연희전문에 입학한 것 같다.

만약 정식 고보를 졸업했다면 1923년에 봤다는 저 검정시험은 필요가 없다.

선생은 아마 검정시험 합격 후 연희전문 입학시험을 따로 또 봤을 것이다. 

이희승 선생이 연희 전문 입학 전에 치렀다는 검정시험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연희전문에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수물과를 다녔는데, 2년 만에 경성제대 예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선생 프로필을 보면 연희 수물과를 졸업 후 경성제대 예과를 들어간 것으로 나오는데 일단, 수물과는 4년으로 졸업하기에는 재학연한이 짧고 경성제대 예과를 들어갔다면 같은 고등학교 과정인 연희전문은 더 다닐 필요가 없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연희전문 2년 재학 후 경성제대 예과 합격으로 그만두고 옮 긴것이 아닐까 한다. 

1925년의 경성제대 예과 합격자 명단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이해 경성제대 예과에는 일본인 111명, 조선인 49명이 합격하여 총 160명의 합격자를 낸 것으로 되어 있다. 경성제대 예과가 일제시대 유일의 고등학교였으므로 한 해에 고등학생 (예과생)이 49명 나온 셈이다. 이희승 선생은 문과 B에 있다. 일제시대 조선인으로 경성제대, 연희, 보성 전문 등 입학생은 모두 신문에 이름이 실렸다. 숫자가 많지 않아서 가능했을 것이다.

수물과를 다닌 분 중 조금 더 표준에 가까운 프로필이 해방전 이 학교를 다니고 해방 후 초대 원자력연구소장을 지낸 박철재朴哲在(1905~1970) 선생이다. 

박 선생 프로필을 보면 :

양평공립보통-- 경성제일고보 (1924)-- 연희전문 수물과 (1926-1930)--교토제대 선과생--교토제대 박사 (1940)

였다. 

선생은 해방 이전 연희전문 수물과 출신으로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프로필에는 중간 중간 몇 년씩 재학연도가 끊어진 기간이 나오는데 이 기간 동안 학비를 벌었다고 한다. 

이희승 선생도 경성제대 예과 입학 때까지는 여러 번 취직하여 학비를 번 기간이 나오는데, 아마 많은 조선인 학생이 비슷했을 것이다. 


연세대. 해방 이전 연세대의 학부 구성은 문리대에 매우 가까왔다. (c)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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