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S & MISCELLANIES

임금이 번번이 내리는 부의품, 대체 어디 갔는가를 물어야 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16.
반응형
이곳에 묻힌 사람이 왕 혹은 왕비가 아니라면 저 부장곽 토기는 개인 물품이 아니라 공공재다. 다시 말해 국가 혹은 왕실이 운영하는 국영 그릇공장에서 생산된 것들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부의품으로 제공된 것이다.



삼국사기 이래 각종 실록을 보면 저명한 사람이 죽으면 임금은 모름지기 사흘간 조정 업무를 정지함으로써 애도기간을 설정하고 또 모름지기 부의품을 내린다.

이 애도기간은 임시공휴일이지만 공경대부는 출근하지 말고 탱자탱자 놀라는 뜻이 아니라

모름지기 이 기간 죽은 사람 빈소를 찾아가 상주를 만나 위로하고 또 두툼한 봉투를 내어놓으라는 의미인데,

솔까 그래서 그때는 유명한 사람이 죽으면 좋아라 했으니 하루 잠깐 고개 들이밀고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상주 손잡아 주고는 아버지는 훌륭했네 블라블라하고는 나머지는 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주 찾는 일을 문상問喪이라 하며, 이때 빈손으로 가면 맞아죽는데 모름지기 성의 표시는 물목物目으로 하는데 이 물목이 바로 부의賻儀다.

왜 부의하는가? 그것이 예의인 까닭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임금이 부의를 내어놓았는데 그 아래 공경대부들이 부의하지 않는다?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담 부의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쟝례식장에서 써버리는 소모품이 있고 또 비소모품이 있으니 이 비소모품도 품목이 여러가지라 군악대 같은 무형문화재가 있고 또 주검과 함께 무덤으로 가는 유형문화재도 있다.

이 유형문화재 문제를 부의라는 시각에서 한국고고학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는가?

요새는 장송의례라 해서 이쪽 분야 글 몇 편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 부의품 연구는 전연 없다.

왜인가? 말만 장송의례라 그 무형문화를 파고들 생각도 능력도 없으니 고작 그네가 말한 장송의례란 실상은 한국고고학 고질인 축조기법 고찰의 사생아에 지나지 않아

무덤광을 파며 뭘 넣었네 그 담에 관을 넣으면서 그 안팎으로 무얼 넣고 절을 했네 마네 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실은 개돼지 고고학이다.

부의품 중 무덤에 가야 하는 물목이 있다. 이 물목이 많으면 그것만을 위한 무덤광을 따로 파는데 이것이 바로 부장곽 혹은 껴묻거리공간이라 하는 데다.


이건 규모가 좀 작지만 역시 부의품들이다. 단순히 명기 이딴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 공간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어떤 위광을 누렸는지, 또 상주들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라 당연히 그 위계가 높을수록 부장곽도 물건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예서 관건은 시신이 묻히는 공간인 이른바 주곽과의 관계다.

부장곽이 주곽보다 클 수는 없다.

그래서 주곽은 그 크기가 부장곽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이 부장곽에 부의품들이 집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만 예외가 있다. 임금이 내린 부의 품목이 다른 신하들이 내린 물목과 섞일 수는 없다.

임금님이 내린 물목은 반드시 시체 곁에 가야 한다.

기록이 상대로 풍부한 조선시대를 보면 관을 내리고 문인석 무인석도 농가주기도 한다.

이 부장곽 문제는 그토록 중요한데도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다는 점이 나로선 신통방통할 뿐이며

그러기는커녕 부장곽이 부의품賻儀品, 곧 조문객들이 낸 조의품을 위한 공간이라는 말 여러 번 했는데도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명색이 수십년 고고학 했단 놈도 그렇단 증거 있다 묻는 꼴을 보니 한심해서 말문이 막힌다.

다 떠 먹여 주리?

이 정도 얘기했음 알아 먹어야 할 거 아닌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