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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장화왕후 오씨, 질외사정 피임을 거부한 왕건의 여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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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를 읽다가>

잘 알려진 것처럼 고려 태조의 후비는 29명이다(왕건이시여~).

그중 성씨, 본관,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에다가 어머니의 이름이 밝혀진 분은 둘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 한 분뿐이다.

 

장화왕후 오씨吳氏는 나주인羅州人이다. 할아버지는 오부돈吳富伅, 아버지는 오다련군吳多憐君으로, 대대로 나주의 목포木浦에 살아왔다. 오다련군은 사간沙干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에게 장가들어 왕후를 낳았다.

- <고려사> 권88, 열전1, 후비1, 태조 후비 장화왕후 오씨

 

같이 실린 다른 태조의 후비들을 보면 본관과 아버지 정도만 언급되고, 더러는 성씨마저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분명 이들은 당대 내로라하는 세력의 여식들이었을 것인데 말이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는 한목소리로 오씨의 집안이 '측미側微'하다고 진술한다.

그 진술 뒤에는 그래가지고 태조가 오씨를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일을 하다가 연장을 꺼내 질외사정했다는, 지금의 우리도 얼굴이 붉어질 만한 이야기가 있다(이게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나오는 피임법이라고 하는데, 뭐...). 

그런데 여기 <고려사> 열전에 오씨의 선대가 가장 구체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설명과는 좀 모순되는 결과이다.

이게 다른 후비의 기록이 이리저리 훼손되었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좀 더 고민을 해보아야겠지만, 하여간에 흥미로운 사실이다.

*** Editor's Note ***

콘돔이 없던 당시 왕건은 질외사정을 해서 임신을 피하려 했다.

혹 야동 심취라 그걸 흉내냈는지도 모르겠다.

돗자리에 쏟은 정액을 도로 주워담아 임신하니 그 아이가 그래서 이마빡에 돗자리 무늬가 있었다는데

신라호텔서 해서 아이가 생기면 이마빡에 Silla Hotel이라 적힐라나?

가만 생각하면 왕건은 조루였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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