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낙향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꼭 고향 김천을 고집하지 않는다.
내심 평균을 산다했을 때 75살 정도까지는 서울을 벗어나거나, 혹은 적어도 년중 절반 이상은 서울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다가 나중에 다시 서울로 기어올라와서 죽을 준비를 하려 한다.
나는 도저히 대학, 특히 사립대학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집안이었지만, 내가 그 지역에서 대학생활까지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케든 서울로 올가가서 결판 한 번 내 보겠다 해서 바득바득 서울로 기어올라왔다.
다른 직장 생활 잠시 거쳐 이쪽 업계 기자가 되었을 때, 날더러 부산지사로 내려가지 않으면 합격을 취소한다 했을 때 청천벽력이었던 까닭은 그 꿈이 산산조각날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부산에서의 생활 1년이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었던 까닭이 바로 이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때 거대한 야망? 이런 걸 품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뚜렷한 것도 없었다.
기자도 어쩌다가 되었을 뿐이었고, 그렇다 해서 내가 기자로서 무슨 거대한 꿈을 꾼 것도 없다.
어찌하다 보니 문화재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하다 보니 그런 대로 적성에도 맞는 듯해서 그걸 오래하다 보니, 계우 꿈이라는 게 생겼으니, 그래 이 문화재 업계는 내 손아귀 아래 둬 보자 하는 꿈을 꿨다.
지금은 끈 다 떨어졌지만, 한때 그 비슷했다. 그들 자신이야 어찌 생각했을지 모르나 한때 이 업계는 내 말 한 마디가 곧 법이라고 할 만한 시절도 있었고, 그에서 한껏 우쭐한 기억도 있다.
내 꿈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더는 젊은 날과 같은 패기 혹은 야망 혹은 대몽은 없다.
나로선 이룰 거 다 이루었으니,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 실컷 하며 살아보자 해서 이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이 길이 뭐가 뚜렷하거나 하는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 하면서 하루하루 보낼 뿐이다.
내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고, 또 내 경험을 일반화할 우려는 없지 않으나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말은 해둔다.
전제하지만 나는 이른바 지방 차별적 시각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말해둔다.
뭔가 일을 하려면 모름지기 서울에서 쇼부를 쳐야 한다.
꼭 거대한 야망이 아니라 해도, 적어도 젋은 시절은 서울에서 쇼부를 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역이 열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경험 때문이다. 모든 정보가 유통하고 생산되는 곳이 서울이니 이런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나는 모름지기 무슨 일을 하려거든 적어도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 해 보라 권하고 싶다.
물론 이 세계화시대에 서울도 좁다. 다만 서울도 맛보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을 접한다는 것은 청소년기 없이 중년에 접어든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
미안하다. 지역을 고수하며 지역을 자랑으로 아는 분들께는 부디 이런 말들이 좌절이나 비아냥으로 다가가지 않았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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