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거창할 거 없다.
겸사겸사한 일이 있어 고향에 들렀더니 집앞에서 옆집 아지메가 아드님과 감자 막 수확하는 중이라
잠깐 돕는다는 핑계로 한 삼십분 거드는 시늉만 내고는 그 놉 삼아 캔 감자 중 알이 특히 굵은 놈 세 개를 얻어 안고 오면서 함포고복 만세를 불렀다.
참 튼실한 백감자다.
그땐 이런 감자도 귀한 시절이라 식구는 많은 대가족이라 먹을 게 정말 귀한 시절이었고
그 감자 캐는 때면 온 식구 달라들어 허리 부러져라 노동에 혹사했으니
그런 시절에 견주면 요샌 제법 기계화해서 줄기 뽑아낸 이랑을 경운기를 개조한 기계가 좍 바닥을 훑어버리면 순식간에 이랑은 없어지고 허멀건 감자들만 토실토실 나뒹구니
물론 저걸 일일이 포대에 담아 옮기는 일이 또 고역이라 저 일 반나절이면 평소 농사 짓지 아니한 사람은 허리가 나가 몇날 며칠을 끙끙이며 앓아 눕는다.
그래도 저만치라도 기계화를 이룩했으니망정이다.
혹자는 저런 모습에 이 정도면 이젠 농사도 지을 만하다 하겠으며
실제 그걸 믿고 이른바 귀농이니 귀촌이니 해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는 분도 제법 되지만
막상 끝까지 버팅기는 이 많지 않음은
농사가 얼마나 고된 노역임을 다시금 증명한다 하겠다.
아무리 기계화가 진전했다한들 사람 손이 다 가야하는 일이다.
편리를 추구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또 다른 노역이 따르기 마련이다.
기계화로 진전한 절대 육체 노동은 줄었는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 더 배가하는 역설이 빚어지기는 농사 또한 마찬가지다.
종래엔 하루가 걸렸을 감자수확이 반나절로 줄어든 만큼 또 다른 농사일이 나머지 반나절을 차지한다.
결국 절대 총량은 불변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라 어느 한 사람을 새로 얻는다는 것은 그에 따른 또 하나의 상실이라는 희생을 요구한다.
이 사람을 알아 새로운 것들을 보충한 만큼 딱 그에 비례해 내가 가진 다른 사람이 그만한 상처를 안기고 떠나더라.
감자 잠깐 캐는 시늉하며 격발해서 읊조린다.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문성은 선택을 말살한다, 전문기자? 꿈도 꾸지 마라 (24) | 2024.06.27 |
---|---|
젊어선 서울 물 먹어라! (21) | 2024.06.25 |
고생한 당신, 떠나라 (14) | 2024.06.24 |
동명이인에서 가끔 돌출하는 문제 (18) | 2024.06.23 |
첫 단행본을 내면서 다음 단행본을 준비해야 한다 (23) | 2024.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