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료의 녹봉은 형편이 없어 생활할 정도가 못 되었다. 앞서 마첩馬帖과 행하行下를 올리니 돈 많이 번 듯하지만, 실제로는 고향집에서 부모님께 용돈 받아가며 공무원생활을 했다.
5대조와 6대조가 주고받은 편지에 따르면 관료 생활 중에 고향에서 보내준 돈이 떨어지면 서울에서 지인에게 빌려서 쓰곤 하였다. 공무원 7년차에도 돈 200냥을 꾸어 쓰며 올해 안에 갚겠다고 써준 차용증이 이 수표手票다.
탈초하면 이렇다.
辛未三月初十日 前手票
右票事錢文貳百兩限歲
前備報之意相約印
標主 奇陽衍[着名]
그래서 조선의 관료들은 부모를 봉양하겠다는 빌미로 자꾸 지방관으로 내보내 주기를 청하는데, 이를 걸군(乞郡)이라고 한다. 행장 등에서는 효성이 깊어서 지방으로 나가기를 청했다고 분식회계하지만, 9할 이상은 돈챙기러 나간 것이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정조는 지방관으로 나가 챙기라고 권장하는 상돌아이짓도 한다.
조선은 시스템 자체가 부패할 수밖에 없었다.
*** 위 문서를 보면 전체에 걸쳐 # 비슷한 표시를 한 것은 채권자가 저 수표를 가지고 와 돈을 받아갔고, 이 수표는 효력이 다했다고 효주爻周한 것이다. 보통 저런 수표는 휴지로 쓰는데, 어쩌다 남았다.
*** 참고 : 지방 수령은 본인이나 처의 고향에는 부임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문과 급제자에 한하여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이나 고향 가까운 곳의 수령직을 청할 수 있는데 이를 걸군乞郡이라 했다. 또 이와 비슷한 것으로 걸양乞養이 있으니 부모를 모시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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