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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조선시대 청백리였다는 사족집안

by 신동훈 識 2026.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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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적 청백리 재상들로 꼽히는 채제공, 이원익, 황희(왼쪽부터). 이들이 청빈했는가? 글쎄다, 집안은 떼부자였다.

 
가끔 보면 조선시대 청백리였다는 사족 집안들 이야기가 있다. 

재물에 관심이 없어 황금보기를 돌덩이처럼 하였다던가, 

벼슬이 정승판서인데 집에는 비가 새고 있었다던가, 

그런데-. 

여기 누차 썼지만, 조선시대 양반은 노비와 토지가 없으면 품위가 안 되고

과거 시험도 돈이 있어야 준비하고 보는 것이지 

먹고 살기 바쁜 사족은 과거 보러 올라갈 돈도 없던 판이라, 

조선시대에 청백리였는데 그 집안이 대대로 진사 생원 문과 급제 배출하고 

명문 집안이었다는 소리는

그 당사자는 재물 관심없을지 몰라도 그 주위에 누군가가 그 집안 양반으로 유지하기 위해 분주하게 일했다는 것과 같은 소리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양반집 마님을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청선고淸選考》, 조선 태조 원년(1392)부터 1906년까지의 관원 인명사전 표지와 내지, 권6 <청백淸白>조에 186명의 청백리 명단.



양반이 물을 마시고도 이쑤시개를 쑤셨는지 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재물에 관심이 없어도 토지 노비는 누군가는 관리해서 재물을 모아내야 사족으로 집안 유지가 되고, 

많은 청백리 집안은 그래서 그 집 마님이 재물 담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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