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족보는 단지 가짜 족보가 많다는 이야기,
그리고 가짜 족보는 많지만 우리집은 진짜 족보라는 이야기로,
따라서 우리집은 양반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보는데,
현대 족보의 성립과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족보가 소위 양반들만 간추려 만들어진 것은 조선 중기 이전 족보들이 그렇다.
소위 말하는 처가, 외가 사람들까지 다 수록헀다는 이 시기 족보들은
좀 행세하는 양반들 아니면 들어오지 못했고,
같은 부계 친족이라도 서자 후손이거나 아니면 그 신분이 향리를 못 벗어난 경우에는 수록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 전기 족보에 들어가지 못한 집안은 양반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흔히 저 집안은 양반 집안이라고 생각하는 집안 중에도,
조선 전기 족보를 보면, 같은 부계 조상 후손인데도 전체 파의 절반도 수록 안 된 족보들이 있다.
나머지 누락된 파들은 전부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다.
같은 씨족이라도 양반이 아니라 제외된 것이다.
동일한 씨족 족보를 보면 조선 중후기 들어서 족보에 추가되기 시작한 파들이 있는데,
이들은 원래 양반이 아니어서 족보에서 빠졌다가 조선 중후기 부계족보로 전환하면서 편입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양반집 족보라고 생각하는 집안 족보 절반 정도는 이렇게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
이랬던 것이 조선중 후기를 넘어서면서 부계라면 신분 가리지 않고 싣기 시작,
서자는 물론 향리 집안까지 다 싣게 되니,
조선 중후기 족보에 이름이 실려 있고 가짜 족보가 아니라고 해도,
그 족보가 자신 집안을 양반으로 볼 만한 근거가 전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조선 중후기 족보가 그만큼 성격이 특이하다.
같은 레벨의 사람들이 실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조상의 후손들은 신분 막론하고 실어야 한다는 생각아래 편찬된 것이라,
지금 같은 대동보가 만들어지는 단초가 조선 중후기 족보에서 이미 다리가 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따라서 20세기 족보 하나를 들고 자신의 집안 내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족보가 설사 가짜 족보가 아니라고 해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족보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교차 검증할 제3의 사료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집안 사람들은 조선 후기에 교차 검증 가능한 사료를 가진 경우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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