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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조선의 美

by 초야잠필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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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쓰자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조선의 미는 일본미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목하 한국에서 박물관을 가면 차지하는 자기에 대한 찬상은 사실 일본미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의 자기에 대한 미의 발견은 그릇 하나를 놓고 성을 주고 받을 정도라던 일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단절성이 일본에는 없다.

물론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근대적 모습으로 포장하기 위한 인스피레이션을 서양의 학자들에게서 받은 것은 틀림없는데, 이 친구들은 자기들의 전통에서 자기 미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성공한 미를 조선에 연장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만약 좋은 칼이 많이 났다면 해방 후 한국은 일본도처럼 칼에서도 미를 찾았을 것이다. 

조선후기에 판화가 많이 찍혀 나왔다면 우키요에처럼 그 안에서 미를 찾자고 했을 것이다. 

조선인이 원래부터 우리 그릇에서 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책가도에 왜 그런 그림 하나 없겠는가?

책가도에 있는 자기들 치고 여기서 난 그릇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중국 어디선가 난 것 같은 그릇을 올려놨지. 

조선시대에 이 땅의 그릇에서  미의식을 별반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다. 
 
조선미는 틀림없이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조선미"라는 건 많은 부분에서 바로 그 타자의 미의식의 연장에 상당기간 만족해야 하게 되었다. 
 
P.S.1) 아. 스미스소니언 아프리카박물관 전시물은 거의 모두 민예품이더라고. 아마 그 "아프리카의 미"는 서양학자들이 발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발견된 미를 즐기는 이방인에는 나도 포함된다. 지금 우리 것을 보는 우리의 "미의식"이 스미소니안 아프리카박물관이 아닌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 

P.S.2) 물론 지금부터 백자 연구는 관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P.S.3) 한국이 일본과 이 부분에서도 완전히 대등해지기 위해서는 일본이 깔아 놓은 "일본미"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몸부림 없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책가도. 여기서 백자 한번 찾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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