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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이나 추석 때만 되면 기사화하는 차례간편화에 대한 기사를 보고
조금 생각을 더 써 본다.
기사에 나와 있는 바 유교문화원의 담당자 분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하신 바,
특히 '홍동백서'(紅東白西)나 '조율이시'(棗栗梨枾) 같은 격식은 문헌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센터는 설명한다. 전통 예서 어디에도 과일의 종류나 위치를 엄격히 규정한 바는 없으며, 유교의 핵심은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마땅함을 찾는 '시중'(時中)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바 우리나라 유교의 핵심이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마땅함을 찾는 시중"에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 우리가 "시중"을 찾았다는 것인가?
"시왕지례"를 따라가면 안된다고 하여 조선시대 후기 내내 예학을 팠고,
그래서 누가 더 "고례"에 가까왔는가를 가지고 "예송"을 한 것 아닌가?
이런 히스토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유교의 핵심이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마땅함을 찾는 시중에 있다니-.
이런 눈가리고 아웅 때문에 유교가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어진 것이다.
시중에 있다면, 차례상부터 걷어버리고
음식이 없어도 되니 모두 모여 조상을 기리며 묵념을 해도 상관없고,
조상을 생각하는 추념의 정신만 있다면 차례상은 없어도 된다고 일갈해야 그것이 오늘날의 "시중"이지.
차례상 그대로 두고 음식을 5가지로 줄이면서 "시중"?
참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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