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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진상하는 말이 죽어 파직된 경주 최부자 집안 제주 정의현감

by taeshik.kim 202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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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단상>

1. 지금의 성읍민속마을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 정의현이라고, 제주 남동부 지역을 다스리던 고을의 읍치邑治가 있었다. 조선 태종 때 고을을 만들고 조정에서 현감縣監을 파견해 다스렸다.

2. 정의현감을 지낸 사람들 중에 뒷날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뒤적거려보는데, 흥미로운 분을 만났다. 현종 때 정의현감을 지냈던 최국성(崔國成, 1626~?)이라는 분이다.

3. 이 분은 경주慶州가 본관이고 경주에 살았다. 경주의 경주최씨라...뭔가 생각이 날듯말듯해서 찾아보니 정말로 그 유명한 경주 최부잣집과 관계가 있는 분이다. 경주 최부잣집의 1대 최진립(崔震立, 1568~1637)의 동생 최계종(崔繼宗, 1570~1647)의 손자이고, 2대 최동량(崔東亮, 1598~1664)의 당질(최계종이 당숙에게 양자로 들어갔으니 족보상으로는 더 차이가 나지만)이다.

4. 최국성은 1651년(효종 2) 무과에 급제해 사헌부 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이 분의 아버지가 최동로崔東老라는 분인데 아들을 여덟 명이나 낳았다. 그 아들들이 우애를 돈독히 나누었고 자손들이 경주최씨 육의당계六宜堂系(육의당은 최계종의 호)를 이루어 번성했다. 해장국으로 유명했던 경주 팔우정八友亭이 최동로의 집터였다. 지금과 같은 큰길을 내기 전까지 최동로의 아들들을 상징하는 홰나무 8그루가 숲을 이룰 정도로 무성히 자랐다고 한다. 그 여덟 아들 중에 최국성이 포함된다.

 

 

5. 그런데 그의 정의현감 생활은 끝이 좋지 못했다. <현종실록>에 따르면 1670년(현종 10) 6월 25일에 제주의 공마선貢馬船이 침몰해서 서울로 올려보내던 말 25필이 바다에 빠져죽었다. 정의현감 최국성이 그 책임자였기에 파직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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