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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창덕궁을 찾은 도쿄미술학교장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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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13년하고도 11월 1일>

도쿄미술학교 교장인 마사키 나오히코(正木直彦, 1862~1940)와 그의 일행 3명이 창덕궁(이거나 창경궁? 하지만 이때는 이미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이름을 갈아붙이고 입장료를 받던 상황이었으니....아무래도 창덕궁일 듯하다)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용건 부분 글자는 잘 모르겠는데(무슨 서무庶務가 어쩌고....인 듯 하다) 이왕직李王職에서는 옛 대한제국 황족들이 사는 궁궐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창덕궁경찰서에 이 사람들이 궁궐 문을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리는 '입문통지서入門通知書'를 끊어주었다.

이 '쯩'을 궁 앞에서 보여주면, 창덕궁경찰서에서는 "하이! 오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하고 그 무거운 궁문을 열어주었겠지.

그러나저러나 당대 일본 미술계 실력자 중 한 명이었던 마사키 상이 창덕궁에 들러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른바 '이왕가미술관' 컬렉션 관련이었을까?

저 흘려쓴 '요건要件' 부분 글자를 읽어본다면 답이 있을 텐데....


*** 편집자주 ***


마사키 나오히코 회고록 같은 게 있을 텐데, 또 당시 신문 같은 걸 뒤지면 그런 데서 어떤 빌미를 찾지 않을까 싶다.

그의 행적은 아래 참조

https://ja.m.wikipedia.org/wiki/%E6%AD%A3%E6%9C%A8%E7%9B%B4%E5%BD%A6

正木直彦 - Wikipedia

正木直彦 日本の教育者・官僚

ja.m.wikipedia.org



*** 원저자 붙임 ***

<보름쯤 전>

재미있는 문서를 발견하고 가볍게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었다. 이제 다시 읽어보니 아래 '요건'이 뭔지 감이 잡힌다. 스에마쓰末松 서무과장庶務課長과의 면회面會라고 읽어야 뜻이 통한다.

당시 이왕직은 1사司 6과課 체제였다. 그중 '서무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왕직에 스에마쓰라는 직원은 분명 있었다.

이왕가박물관 운영에 깊이 간여했고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를 '발견'했다는 스에마쓰 구마히코末松熊彦(1870-?)가 그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그의 행적이 약간 확인된다. 그는 1870년 11월 16일 후쿠오카 태생으로 1904년 인천 미두취인소(지금으로 치면 증권거래소?) 지배인으로 처음 이 땅을 밟았고, 대한제국 궁내부 촉탁과 사무관을 거쳐 1917년 현재 이왕직 회계과장과 서무과장을 겸하고 있었다.

"야인 타입을 싫어"하며,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二宮尊德을 존경"하고, "성격이 온후하고 침착하여 일반직원으로부터 평판이 좋"다고 하니 깔끔한 거 좋아하고 꽤 부지런하면서도 아랫사람 잘 챙기는 스타일이었던가 보다.

그건 그렇다치고, 도쿄미술학교 교장씩이나 되는 거물이 그를 면회해야했을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이왕가에 일본 '현대미술'을 납품하기 위한 협의였을지, 궁궐 구경을 하려고 했음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을지?

이때가 1915년 공진회 직전이었음을 떠올리면 뭔가 단서가 있을 법도 한데, 아직 거기까지 찾기에는 정성이 닿지 않는다.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도대체 왜 글씨를 저렇게 써가지고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느냐는 사실이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원.

- 글씨를 읽는데 큰 힌트를 주신 서성호 선생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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