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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선생의 "기원전 3-2세기 요동지역의 고조선문화와 명도전유적" 논문에 나오는 지도다.
필자가 항상 생각하는 것 중에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과연 구리제련이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싶은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전통시대에 구리생산이 넉넉했던 때가 없다.
따지고 보면 석검이라는 것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것도 위세품으로서 청동검을 만들어 낼 구리의 양이 모자라서 아닐까 싶은데
흔히 용범이 나오면 청동기제련과 주조가 모두 현지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제련과 주조는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일본에서 가마쿠라 시대 대불을 송나라 동전을 가지고 주조했듯이
용범이 나와도 그 주조의 재료가 어딘가에서 제련한 구리냐 아니면 이미 만들어 진 청동기물을 녹여 재주조한 것이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 아닐까.
위 지도에서 보듯이 초기세형동검이라는 것, 시대로 보나 지리적으로 보나 명도전 분포와 상당히 겹치는데
(이것이 2000년에 나온 논문인데 크게 바뀌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요하 동쪽 청천강이북에서 초기 세형동검 주조는 명도전을 녹여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저 시대에 아무리 생각해도 구리광산을 현지에서 개발하여 제련까지 했을 것 같지가 않다.
P.S.1) 흔히 중국의 청동기와 한국의 청동기의 성분분석 데이터가 많이 회자되는데 필자 생각에는 한국청동기와 성분비교를 해야 할 것은 중국의 화폐가 아닐까 싶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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