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춘배가 암것도 모르는 지방 처자들 모시고선 조선 궁궐 현판 전시장을 안내하며 한창 야부리를 깠다.
무더위에 그 어중간 감시원들 간이 의자에 앉았다가 잠깐 잠이 들어 그 장면이 몰카 촬영되고 그것이 또 춘배를 포함한 두어 사람한테 공개되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넘들이 볼 때야 혹 연출이란 말도 나오겠지만 그대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저 깰꼬닥 사건이 있기 직전 춘배가 신나게 아는 체를 했으니 지방 처자들 맞장구에 더 신이 난 것이 분명했다.
신석기시대 사냥도구 공부하던 친구가 어쩌다 전시과장 되니 아주 신났다. 난 박사과정 수료요 석사가 한국고대사 가운데 쩜 찍고 고고학이다.
엄연한 고고학도요 역사학도이며 단군조선 이래 이리 똑똑한 기자 없고 이리 똑똑한 역사학도 고고학도 없다.
누가 감히 나를 당한단 말인가?
쏘리 너무 나갔다. 암튼 각설하고 춘배가 이 현판에 서서 구라지기를 영조가 81세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며 회한에 젖어 억석회만億昔懷萬이라 했대나 어쨌대나
그래 글자 그대로는 옛날을 추억하니 만가지 회포가 일어난다 뭐 이 딴 뜻이겠다.
춘배가 저짝 전시실로 일군의 지방처자, 춘배를 신으로 아는 그 처자 일부와 더불어 사라지자 처진 몇몇 처자들 앞에서 내가 드디어 나섰다.
"춘배는 암것도 몰라. 신석기 고고학도, 것도 석사만 한 춘배가 뭘 알겠어?
여기 잘 봐. 저 네 글자 중 유독 두번째 글자 석昔만 올려 썼지? 뭐 현판 상태 때문에 저리 쓴 거 같아?
피휘야 피휘! 피휘避諱 알지? 높은 사람 높이고자 해서 예컨대 그 글자 앞에선 한 글자 띄우는 그런거? 이걸 글자를 띄워 존경의 뜻을 나타낸다 해서 공격피휘空格避諱라고도 하지
근데 글자 띄우기만 아니고 글자를 돌출하는 방식으로 존경의 뜻을 표하기도 하는데 이게 바로 그 경우야.
그럼 옛날 석昔이 뭐겠어? 그냥 옛날이 아니고 바로 아부지 숙종이야. 아부지라서 아부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옛날이라 쓴 거야."
순간 "오 그래요? 역시 단장님이세요 호호호"
으쓱한 어깨, 다시 힘을 주어 얘기를 이어갔다.
"뭐 말은 그리 해도 솔까 반신반의하지? 그럼 같은 영조가 쓴 다른 현판들을 보이주께 잘바.
봤제? 문구까지 똑같은 억석憶昔이라 했자나? 다 똑같이 유독 석昔자만 높여 썼지? 내 말 맞지?"
"우앙 역시 단장님 엄지 척!"
"뭘 또 이 정도로 날 추앙하고 그래? 겸연쩍스럽구만"
속으로 춘배 쌤통이다 하고선 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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