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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뮤지엄톡톡

[충주답사] 잊지못할 수암 권상하 묘소

by 여송은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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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28.(토) 권상하 묘소

다른 답사지 일정을 소화하느라 늦게 권상하묘소에 도착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권상하 묘소를 찾아 가기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우선 네비게이션에 의존하는 저로서는 네비게이션에 검색했을 때, 위치정보가 나오지 않으면 당황스럽습니다.

다행히 같이 간 다른 선생님께서 네비게이션에 ‘충주호관광농원’을 검색한 다음 찾아가다가 권상하묘소 푯말을 보면 그 길로 들어 오면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문순공 수암권상하선생 묘소


천천히 주행하다가 길 옆으로 저 푯말이 보이면 푯말이 가리키는 길로 들어가면 됩니다.
오프로드(?) 같은 흙길을 지나 차가 더이상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아 우선 차를 세워두고 걷기로 했습니다.

문순공 순암 권상하선생 묘소


열심히 걷다보면 또 위 사진의 표지석이 보이는데, 여기서부터 300m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오! 희망적인…!!

하지만 묘소에 도착하고서야 알았습니다.
여기서부터 300m는 묘소까지가 아니라, 묘소 가기 전 철책까지였다는 걸요…ㅎㅎㅎㅎ

열심히 걷는 중

출입 제한 안내판

이런…
열심히 갔더니만 사유림이라 들어갈 수 없다는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힘들게 왔는데 돌아가야하나 순간 고민했지만, 다행히 방법을 찾아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부터는 묘소를 지키는분의 안내를 받아 묘소까지 갔습니다.

노랑색 동그라미 친 곳이 권상하묘소이다.


출입 제한 안내판으로부터 400m 정도 더 올라가면 집이 하나 있고, 그 우측 위쪽에 수암과 그 앞에 자제분 묘가 있습니다.

묘소 가는 길에 찍은 찔레꽃

묘소 가는 길에 찍은 붓꽃

드디어 보이는 권상하 묘소

권상하 묘소

휴…
어렵게 권상하 묘소에 도착하였습니다. 6시가 넘은 저녁 즘 도착하여 배고프고 지치기도 했지만, 어찌나 반갑던지요. 선생님을 따라 천천히 묘소를 둘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이 갔던 답사 일원에게 긴급한 전화가 왔는데, 차를 빼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아뿔사…
묘소 가는 길이 산길이어 차량 출입이 없을 줄 알고 산길 중간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왔는데, 마을 할아버지로 보이시는 분이 길이 막혀 못 나가고 계셨습니다.

놀란 마음에 그대로 허겁지겁 달려 산길을 내려가 할아버지께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드렸습니다. 다행히 크게 화를 내시지 않았지만, 정말 죄송했습니다. 초행인지라 그 산길을 우리 말고 차로 다닐거라는 생각을 못했더랬죠…


간단치 않았던 가는 여정에 비해 마무리는 정말 허겁지겁으로되어 허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암 권상하 묘소를 볼 수 있어서 그걸로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저 혼자서는 절대로 못 가볼… 아니 안 가볼 곳이었습니다.

정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권상하 묘소였습니다.


권상하(權尙夏, 1641~ 1721)

권상하

조선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서울 출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한수재(寒水齋). 아버지는 집의 권격(權格)이며, 동생은 우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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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하는 당대 학자인 송준길•송시열 밑에서 학문을 배운 인물로, 서인-노론 학맥을 잇는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권상하는 스승 송시열의 학문과 학통을 계승하여 훗날 스승의 적통을 이은 제자라는 ‘師門之嫡傳’으로 평가받았고, 송시열은 권상하의 집에 ‘寒水齋’를 직접 써주기도 하였다. 또한, 송시열이 정읍에서 사약을 받을때 이후 세도를 권상하에게 부탁하면서 옷과 책도 물려주기도 했듯이 그만큼 송시열에게 권상하는 각별한 제자였다.

조선시대 성리학 도통 전개과정에서 권상하의 영향력과 위상은 중요하고 크다고 할 수 있다. 권상하는 李珥-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고, 李端夏·朴世采·김창협 등 당대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또한, 권상하는 한원진·이간·尹鳳九·蔡之洪 등을 제자로 두었고, 훗날 그의 제자 한원진과 이간 사이에서 호락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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