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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영문학의 본향, 캔터베리성당 Canterbury Cathedral in England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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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자도 아닌 내가 성당 자체를 두고 무엇인가 감흥이 일겠는가? 
한때 문화재로 업을 삼았다 해서 이 고풍연한 성당이 유달리 달리 보이겠는가? 

그래도 이 캔터베리성당Canterbury Cathedral이 실로 묘한 구석이 나한테는 있다. 
꼭 무늬만, 명색만 영문학도라 해서 이 켄터베리가 그와 관련해 어떤 상징성이 있는 곳인지 안다는 뜻은 아니다. 

중세유럽 문학, 혹은 르네상스 문학이라 할 때 저짝 장화반도에는 단테와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가 있다면 
이쪽 잉글랜드 섬에는 언제나 이 성당이 첫 자리를 차지하니, 그 첫자리는 언제나 제프리 초서Geoffry Chaucer 차지이며, 그 절대의 근원이 바로 이 성당인 까닭이다. 

《켄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제목만 보면 캔터베리라는 동네, 혹은 그런 이름을 내건 성당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 모음집인 듯하지만, 실상은 전연 딴판이라, 그에는 이 성당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없어, 실제는 지금의 런던 땅 동쪽 어느 여관에서 우연히 합숙하게 된 켄터베리성당 순례자들이 그 성당으로 가는 길에 노닥이며 풀어놓은 이야기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캔터베리성당을 이제나저네나 하다가 2004년 여름 우연찮게 찾았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곳곳이 상흔이라, 아마도 뒤쪽 궁디쪽에서부터 차츰 수복작업을 하는 중인 듯했다. 

저 허리춤에 아시바가 보인다. 



일대는 몰골 보니 곳곳에 파괴의 상흔이다. 
그 육중함이 이곳에 새긴 녹록치 찮은 역사, 켜켜한 역사의 증언이겠지 싶다. 

허물어져 앙상히 옹벽만 남은 잔해가 어케든 살아남은 본채에 엉겨붙은 몰골이 조금은 처연하다. 


현재 남은 부분은 이 성당이 한창 번성했을 때 견주면 왕창 쪼그라들었음에 틀림없다. 

부속채까지 완연했더라면, 이곳은 캔터베리성당이 아니라 아마도 캔터베리 complex라 했을 터. 


혹여 이차대전 공습이 있지 않았나 모르겠다.

잔해 사이로 들어오는 덩그런 본채가 기묘한 조화다. 

성당 구역은 급격한 도시화와 더불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진 듯 

잔디밭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개인 사유지라는 간판이 곳곳에 보인다.

아마도 성직자놈들이 불하해서 한 몫 챙겼겠지 않겠어? 

뭐 여기나 저기나 다를라구? 

도시 한복판 그마나 중심구역만 지키게 된 처참한 몰골은 우리네 풍납토성과 비슷하다. 



그래도 뒤쪽 보수가 끝난 부분은 그나마 희밀건하다. 
아시바가 빚어낸 묘수라 하겠다.  


내부로 드니 그래도 종교건축 특유의 그 웅한 맛은 있다. 

이놈들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성당을 이리도 크게 지었을까?

그게 예수의 뜻일까? 

그나저나 이곳에서 혹 초서 흔적이 없나 살폈더니, 암것도 없다. 성당 인근 호텔 이름이 초서더만? 

나중에 알아봤더니 초서 무덤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다더만?

그 사원 아침 나절에 다녀왔는데 또 가야 한단 말인가? 



현재 입장료 받는 문으로 사용하는 이곳이 애초의 성당 정문이었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그 폼새 흡사 쌍궐雙闕이라, 그 전면에 기묘한 조각 잔뜩이라, 흡사 영화 세트장 같다.  



성당은 2-3세기 무렵 로마가 쌓았다는 성벽을 토대로 삼는 씨티월 안에 있다.

성벽은 절반 가량이 날아갔거니와 이 몰골은 풍납토성 보는 듯 하다.

그나마 성벽이 남은 지점 아래는 공용 주차장이라, 꼬박꼬박 주차료 받아챙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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