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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자도 아닌 내가 성당 자체를 두고 무엇인가 감흥이 일겠는가?
한때 문화재로 업을 삼았다 해서 이 고풍연한 성당이 유달리 달리 보이겠는가?
그래도 이 캔터베리성당Canterbury Cathedral이 실로 묘한 구석이 나한테는 있다.
꼭 무늬만, 명색만 영문학도라 해서 이 켄터베리가 그와 관련해 어떤 상징성이 있는 곳인지 안다는 뜻은 아니다.
중세유럽 문학, 혹은 르네상스 문학이라 할 때 저짝 장화반도에는 단테와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가 있다면
이쪽 잉글랜드 섬에는 언제나 이 성당이 첫 자리를 차지하니, 그 첫자리는 언제나 제프리 초서Geoffry Chaucer 차지이며, 그 절대의 근원이 바로 이 성당인 까닭이다.
《켄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제목만 보면 캔터베리라는 동네, 혹은 그런 이름을 내건 성당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 모음집인 듯하지만, 실상은 전연 딴판이라, 그에는 이 성당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없어, 실제는 지금의 런던 땅 동쪽 어느 여관에서 우연히 합숙하게 된 켄터베리성당 순례자들이 그 성당으로 가는 길에 노닥이며 풀어놓은 이야기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캔터베리성당을 이제나저네나 하다가 2004년 여름 우연찮게 찾았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곳곳이 상흔이라, 아마도 뒤쪽 궁디쪽에서부터 차츰 수복작업을 하는 중인 듯했다.
저 허리춤에 아시바가 보인다.
일대는 몰골 보니 곳곳에 파괴의 상흔이다.
그 육중함이 이곳에 새긴 녹록치 찮은 역사, 켜켜한 역사의 증언이겠지 싶다.
허물어져 앙상히 옹벽만 남은 잔해가 어케든 살아남은 본채에 엉겨붙은 몰골이 조금은 처연하다.
현재 남은 부분은 이 성당이 한창 번성했을 때 견주면 왕창 쪼그라들었음에 틀림없다.
부속채까지 완연했더라면, 이곳은 캔터베리성당이 아니라 아마도 캔터베리 complex라 했을 터.
잔해 사이로 들어오는 덩그런 본채가 기묘한 조화다.
성당 구역은 급격한 도시화와 더불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진 듯
잔디밭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개인 사유지라는 간판이 곳곳에 보인다.
아마도 성직자놈들이 불하해서 한 몫 챙겼겠지 않겠어?
뭐 여기나 저기나 다를라구?
도시 한복판 그마나 중심구역만 지키게 된 처참한 몰골은 우리네 풍납토성과 비슷하다.
그래도 뒤쪽 보수가 끝난 부분은 그나마 희밀건하다.
아시바가 빚어낸 묘수라 하겠다.
내부로 드니 그래도 종교건축 특유의 그 웅한 맛은 있다.
이놈들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성당을 이리도 크게 지었을까?
그게 예수의 뜻일까?
그나저나 이곳에서 혹 초서 흔적이 없나 살폈더니, 암것도 없다. 성당 인근 호텔 이름이 초서더만?
나중에 알아봤더니 초서 무덤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다더만?
그 사원 아침 나절에 다녀왔는데 또 가야 한단 말인가?
현재 입장료 받는 문으로 사용하는 이곳이 애초의 성당 정문이었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그 폼새 흡사 쌍궐雙闕이라, 그 전면에 기묘한 조각 잔뜩이라, 흡사 영화 세트장 같다.
성당은 2-3세기 무렵 로마가 쌓았다는 성벽을 토대로 삼는 씨티월 안에 있다.
성벽은 절반 가량이 날아갔거니와 이 몰골은 풍납토성 보는 듯 하다.
그나마 성벽이 남은 지점 아래는 공용 주차장이라, 꼬박꼬박 주차료 받아챙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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