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클럽문화가 없던 조선시대, 출근시간을 당겼다

by taeshik.kim 2024. 7. 4.
반응형

전기도 없고 드라마도 없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밥만 먹고 잤다
 
사극을 보면, 퇴청하는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한잔 빨자 하며 기생집 행차해서는 밤새워 퍼마시는 장면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사실인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렇게 올나이트로 영업하는 기생집이 조선시대엔 없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관리라 해서 거나하게 밤새워 한 잔 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조선시대 한양이라는 도시가 향락 문화가 번성했을 것 같은가?

조선시대 문집 같은 데서 등장하는 기생은 모조리 관기라 준 국가공무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강남 클럽들이 아니다. 

그런 향락 문화가 없으니 출근시간이 저처럼 빨라도 대과가 없었다. 

그 무수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긴 글을 보노라면 단 한 명도 아이고 오늘을 출근을 안 했음 좋겠다거나, 출근시간 좀 늦차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단 한 마디도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저들이 한잔을 빨지 아니한 것도 아닌데 대체 어디서 빨았는가?

그 대상이 보통 관기인 까닭에 지방 출장 갔다가 접대 받고 그리한 일을 말하며 

나아가 기타 우수마발은 주막이 서울 시내 주막이 아니라 집에서 퍼마셨다. 
 

이성계 정도전 남은 집 분포 양상

 
정도전...이 양반 한 끝발하다가 단 한 방에 훅 가시는데, 그 훅 간 장소가 광화문 옛날 한국일보 자리였으니,

여기서 개국공신 동기동창들이랑 거나하게 한잔 빨다가 당하셨다. 

그 아들 세종 때 편찬한 태종실록에는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데 개중 하나가 저 날 이성계가 궁중 경복궁에서 몸져 누워서 비실비실하는 와중에 비상이 걸려 왕자들이 경복궁 흥례문 권역인가 어딘가에서 비상대기 상태였다 하지만 개거짓말이라 

그 같은 날에 정도전 남은을 필두로 하는 개국공신들이 그 건너편 남은 집에서 거나하게 한 반 빨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암튼 저 장소를 두고 태종실록은 남은 집도 아니요, 남은 첩집이라 한다. 

그랬다. 

한잔 빨 때는 보통 첩집에서 한잔 빨았다. 

정도전 집은 지금의 종로구청 자리다.

남은은 어디가 집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는데,

첩집이 한국일보인 것으로 보아, 또 정도전 집이 종로구청 자리인 것으로 보아 종로 수송동 근처 어디임은 분명하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조선왕조는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그에서 가까운 지점 노른자위 땅들은 모조리 개국공신 순서대로 분봉을 했으니,

정도전 남은이 저 자리를 점거한 이유는 간단해서 궁중에서 가깝고 무엇보다 출근장소가 지척인 까닭이었다. 

각설하고 암튼 조선시대 출근시간이 아주 빠른 까닭은 그것을 저해할 전날 밤의 향락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