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형물 어딘지 고고학스러운데 편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장수 동촌리 19호분 출토 편자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른바 반파라는 장수가야를 지역정체성으로 삼으려는 전북 장수군이 이 편자를 군 공식배지로도 만들었으니
장영수 현 군수가 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삼았다 한다.
장수군청 홀에는 이와 나란한 다른 가야 조형물도 있다.
이건데 이른바 굽다리받침에 담긴 목이 긴 항아리라 이걸 일본친구들이 쓰는 한식漢式 표현을 빌린다면 뭐라 할까?
기대부직구장경호器臺附直口長頸壺? 난 한국고고학을 볼 적마다 이 친구들이 한국고고학도인지 왜놈고고학도인지 당췌 구분을 못하거니와, 특히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고고학을 하는 친구 중에 이런 얼빠진 놈들이 집중 분포한다는 점이 신이神異로울 뿐이다.
암튼 이 조형물 설명은 이렇다.
이에 의하면 1995년 기증품인데 삼고리 삼장마을 주민 한홍석이란 분이 발견한 것으로 이를 통해 삼국시대 장수 지역에서 가야 문화 존재를 알린 시원이라 한다.
무진장 지역학으로서의 가야 역사고고학은 전북대 출신으로 지금은 군산대에 재직 중인 곽장근이 개척하게 되거니와 그것이 문재인 시대에 들어와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다.
이후 활발한 고고학 조사를 통해 특히 장수와 남원 지역 산능선을 따라 조성한 삼국시대 공동묘지가 가야문화 흔적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가야에 착목한 장수가 그것으로써 지역정체성을 삼으려고 나선 움직임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지켜보려 한다.
어제 강연에서도 누차 한 말이어니와, 장수가 지역정체성을 대변한다 해서 내세울 변변찮은 것이 없었다. 어쩌면 장수는 무주 진안과 더불어 낙후의 대명사였다. 세 지역을 아우른 무진장은 서울 기준이긴 하지만, 무진장 오지라는 말과 동의어나 다름없었다.
다만 무진장 내부를 보면, 무주는 무주구천동과 덕유산과 무주리조트라는 압도하는 상징이 있고, 진안은 마이산이라는 가장 유별난 산이 우뚝한 데 견주어 장수는 그에 견줄 만한 마스코트가 전연 없다는 사실이 언제나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런 마스코트가 꼭 있어야 하는가 하는 근간의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사실이다.
장수는 지금 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은 대표성 있는 표지가 없다. 그 빈 자리에다가 장수가야를 내세우고자 하는데, 그 타당성을 따지기보다 왜 저리해야 하는지 그 심정을 우선은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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