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자꾸만 한사군, 개중에서도 낙랑군으로만 좁혀서 그렇지, 이 문제는 내가 보는 한 심각성이 여전히 잠재하는데,
이 문제와 관련해 나는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무한 반복 중이거니와,
이른바 조선 요동설 혹은 요서설로 대표하는 민족주의 사학계열과 그에 감발한 작금의 이른바 재야사학 계열, 그리고 그 반대편에선 실증주의 계열과 그것을 묵수하는 작금의 이른바 강단사학 계열 모두 다 맞을 수 있다는 말을 하거니와
내심으로는 실상 이 둘 다 맞을 수 있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그렇다 해서 이 모순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뾰죽한 묘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해 둔다.
물론 이른바 작금 강단사학이라 해도, 이른바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이라는 요망한 이론을 들고 나와서 고조선 중심지가 지금의 중국 땅에 있다가 뭐라더라?
진개의 침략에 서쪽 일대 2천리인가를 내어주면서 한반도로 기어들어왔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더라만,
암튼 각설하고 나는 언제나 평양 중심설을 묵수하는 사람들한테 그들이 지닌 최대 맹점을 해결하기를 요구하거니와 그것이 무엇인가?
평양이 위만조선 중심지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을 입증할 만한 빼도박도 못할 고고학적 증거가 보강되어야 하지만, 놀랍게도 없다!!!!
평양 일대에 위만조선이 기원전 200년 이래 기원전 109년, 혹은 108년까지 굳건한 중심지요 도읍이요 왕성이 있었다는 근거는 눈꼽만큼도 없다.
물론 있다고 주장하는 얼빠진 놈들이 있기는 하더라만, 그네가 내세우는 위만조선 근거는 허약하기 짝이 없다.
평양 위만조선설, 그에 기반한 평양 낙랑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인가?
천만에!
설혹 위만조선 평양설이 입증된다 해도, 위만조선이 들어서기 전 이른바 기자조선이 그 땅에 존재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가장 큰 골치다.
위만조선은 고사하고 기자조선이 평양에 중심으로 존재했다는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 줌도 되지 않은 후대 문헌기록을 견강부회할 수는 없다.
기자조선, 특히 그 말기 적어도 몇 백년은 존재했을 그 존재가 평양 혹은 그 부근에서 증명이 되어야 한다.
있는가? 기자조선 실재를 증명할 만한 빼도박도 못할 고고학적 증거가 있는가 말이다.
이 두 가지를 해명하지 않고서는 저 논쟁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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