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은 옛 절을 감추었구나>라고 해야 할까?
살아 꿈틀거리는 산줄기가 기와지붕 우뚝한 절을 품었다.
기와도 푸른빛, 절 주변 수풀도 푸른빛, 또아리를 튼 산도 푸른빛이다. 스스럼없는 붓질 몇 번에 기막힌 풍경이 펼쳐진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풍곡豊谷 성재휴成在烋(1915-1996) 화백이다. 대구 출신으로 석재 서병오, 의재 허백련 같은 대가들에게 배우고, 국전에 3회 입선한 뒤 야인으로 지내며 작품활동을 했던 분이다.
파격적인 산수와 쏘가리 그림이 장기였는데, 이 작품도 구도나 색감이 남다른 데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흠이 꽤 많다. 애초 화첩에 그려졌던 그림이라 가운데 선이 가 있는 것이나 바탕이 찢겼던 것은 둘째 치고, 가운데의 그 선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작품만의 문제였을지 화첩 전체의 문제였을지는 모르지만(아마 후자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가장자리 어느 쪽이 심하게 닳았거나 뭐가 묻었던지 찢겼던지 한 모양이다.
화첩을 뜯어서 액자로 만들자니 그 부분이 걸린다. 어떻게 한다...
이 작품을 맡은 표구사는 가장자리를 잘라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런데 그 부분만 도려내자니 그림의 수평이 안 맞았던가보다. 결국 그는 네 변을 쐐기모양으로 오려내어 문제를 해결(?)했다.
표구사의 계책은 하나만 빼면 완벽했다. 화첩그림 가운데 생기는 선의 기울기는 어쩌지 못한 것이다. 여백이 줄어들어 좀 갑갑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굳이 흠을 잡지 않아도 이 그림은 아름답다.
보는 이가 그림 속으로 훌쩍 다녀오고 싶어지는 그림일진대, 그런 흠이라도 있는 것이 돌아오는 데에는 더 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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