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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소나무 아래에서 달빛에서 만났다가 남북으로 영영 갈린 김기창과 정종여

by 한량 taeshik.kim 2021. 1. 21.


해방 전 어느 날,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1892-1979) 문하인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1913-2001)과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1897-1972) 제자인 청계靑谿 정종여鄭鍾汝(1914-1984)가 한 자리에 모였다.

스승은 달랐지만 그래도 퍽 가깝게 지냈던 듯싶다. 그 둘이 무슨 연유로 같이 만난 것이다.

이 시절엔 글 좀 하고 그림 그린다 하는 이들이 모이면 합작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좌장이나 자리를 주선한 이에게 선사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그들 앞에 종이가 놓이자, 청계가 먼저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거친 듯 유연한 나무의 둥치가 멋스러운데, 아래 공간이 비어 있다.

거기 운보가 신선과 동자를 세웠다. 누런 옷의 노인은 저 멀리를 바라보는데, 청의동자는 화폭 바깥을 흘깃 쳐다본다.

다 되었다 싶었는지 청계가 다시 붓을 잡았다. 그리고 화제를 써내려간다.

松下步月 송하보월

靑鷄寫老松 청계사노송

雲圃畵神仙 운포화신선

그리고 자기 도장을 꽝 찍었다. 전서체 글자 넉 자로 화폭 위에 달이 휘영청 뜬 셈이다.

실컷 '운보雲甫'라 했는데 왜 '운포雲圃'인가? 원래 김기창의 호는 '채마밭 포圃'를 쓰는 '운포'였다. 그러다 해방이 되니 '포'의 네 변을 걷어냈다. 그래서 '운보'가 되었다 한다. 자연스레 이 작품의 연대도 짐작된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 둘은 각각 남에서, 북에서 인정받는 화가로 살았다. 하지만 6.25 전쟁 이후 평생 다시 만나진 못했다.

사람은 그렇게 가고 작품은 어딘가에 남았는데, 어느 도록에 조그맣게 실린 것을 확대해 보았다. 실물은 또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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