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이래 풍납토성이 잇따라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한성도읍기 백제 왕성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속속 제출되었지만, 풍납토성 발굴 이전 절대 무변한 왕성으로 간주된 몽촌토성을 지지하던 고고학도나 역사학도는 풍납토성을 향해 반문하기를
"풍납토성이 왕성이라는 증거가 뭐냐"
고 했더랬다.
한데 그때 내가 참말로 신기하고 의아했던 점이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이 그간 제시한 몽촌토성이 왕성이라는 근거는 코딱지 만큼도 없다는 것이었다.
지들이 몽촌토성이 왕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왕성이라는 근거가 없음에도 그렇다고 윽박을 질러놓고서도 그보다 왕성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몽촌에 견주어서는 하늘 땅만큼이나 많은 풍납토성에 대해서는 감히 어떻게 그런 억지를 부렸는지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도대체 모르겠다.
그렇게 풍납이 왕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 중에서 적어도 정통 고고학도나 역사학도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못내 몽촌에 대한 미련이 있는지, 왕도 한성은 풍납과 몽촌이 세트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슬그머리 꼬랑지를 내리더니, 이제는 너도 나도 풍납토성에 눈도장찍기가 바쁘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우리 현재의 대통령 표현을 빌리고자 한다.
"참 나쁜 사람들이에요"
(2015. 1. 12)
***
이후 몽촌토성도 사정이 변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활발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풍납토성에는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에 버금하는 한성백제시대 버금 왕성 혹은 적어도 그와 세트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유의할 점은 1996년 이래 풍납토성이 본격 발굴되기 이전까지 80년대 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 즈음한 올림픽 경기장 건설에 즈음해 그 대상지에 포함된 몽촌토성은 비교적 활발한 발굴조사가 있었지만, 그곳이 왕성임을 뒷받침하는 근거 혹은 증거는 눈꼽만큼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풍납토성이 왕성임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속속들이 공개되기 시작하자, 기존 몽촌토성 백제왕성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저런 패악질을 저질렀다.
아무런 근거 혹은 증거도 없이 몽촌토성이 백제왕성이라 주장했던 것이며, 더구나 지금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 그것이 축조된 연대가 3세기 중후반이라는 밑도끝도 없는 얘기를 싸질러 놓았던 것이다. 동진시대 수입품이라 간주하는 유약 바른 도기 쪼가리 한 점이 성벽에서 출토됐다며, 그것이 결정적 증거라고 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쪼가리도 진짜로 성벽에 출토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출토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이라고는 코빼기 한 장 없고, 그 출토지점을 표시한 도면 역시 코빼기 한 장이 없다. 오직 그렇다는 주장만 은근슬쩍 딜링 나열한 보고서만 있을 뿐이다.
지들이 그렇다고 하니 믿으라? 어케 믿어? 내가 널 믿어?
설혹 그것이 성벽에서 출토됐다한들 그것이 어찌 축조연대를 결정한단 말인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일들로 점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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