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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그 비판의 서막을 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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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을 회고하면 내가 양산한 기사 중에서 유난하게 애착이 가는 기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개중에서 나는 아래 첨부하는 서평 기사를 꼽는데, 내가 알기로 중국정부가 추진한 역사프로젝트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그것도 제대로 핵심을 짚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혹 내 조사가 미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글이 혹 있는데 내가 놓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누구도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후 이 단대공정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학계에서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는데, 내가 이 서평 기사에서 제시한 그 시각에서 한치 어긋남이 없다고 나는 본다. 


덧붙이건대 이때 분석 대상으로 삼은 저 책은 2003년 도서출판 일빛에서 처음으로 나올 적에는 저와 같은 '천년의 학술현안'이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2년 뒤인 2005년 개정판을 낼 적에는 이미 제목을 '하상주 단대공정'으로 바꾸었다. 왜 바꿨는가?


이건 내가 출판사에 제안한 것이기도 했거니와, 이미 그 무렵에 저 하상주 단대공정이 이른바 동북공정과 맞물려 국내에서 문제가 심각히 대두하게 됨으로써, 초판 제목으로는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수 없다고 봐서 저리 이름을 바꾸었다. 


2003년 초판



이 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이 프로젝트 핵심은 이학근이었다. 나는 이학근을 존경하나, 그의 역사학이 지닌 국가주의적 폐해를 심각해 여겨보는 중이었다. 내가 보는 이학근은 국가권력을 등에 엎은 제국주의 역사학도의 전형이었다. 그에게는 학문적 명성과 더불어 무엇보다 국가권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2005년 개정판



그 이전 나는 이학근 글을 여러 편 읽었는데, 그에서 노골적인 중화주의 중심 국가주의 성향을 봤다. 그는 고힐강이 주도한 종래의 의심 위주 중국 상고사에 대한 반발로 전설까지 믿어야 한다는 신고주의信古主義를 제창했다. 그는 교묘한 언설로 신고주의가 일견 과학적인 듯이 포장했지만, 내가 보는 그는 맹신주의의 그것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것은 곧 다민족일국가를 표방하는 현재의 중화주의 사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에 이후 나는 이학근 사관의 이런 위험성을 지적한 별도의 기사 한 편을 더 작성했다. 이는 나중에 기회를 보아 소개하기로 한다. 



2003.02.07 07:14:29

<책> 천년의 학술현안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반도 및 만주에서 명멸한 역대 왕조는 수명이 대단히 길다. 신라는 1,000년을 존속했고, 고구려와 백제는 700년을 존재했다. 고려와 조선왕조 또한 수명이 각각 500년이나 된다. 


한데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이들 역대 왕조가 스스로 태어나 형성되고 발전하고 쇠퇴해갔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신라만 해도 한반도 동남쪽 귀퉁이 경주에서 소국(小國)으로 출발한 사로국(斯盧國)이 점점 이웃 나라들을 정복하고 백제, 고구려까지 멸한 다음 통일국가를 이룩했다는 식으로 그 역사를 개괄한다.


하지만 신라는 끊임없이 '창출'됐다. 신라는 왜(倭), 중국, 백제, 고구려, 말갈과 같은 타자(他者)들을 줄곧 의식하면서 간단없이 그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중국인 스스로는 중화주의라는 콧대 높은 자존심 때문인지, 이미 5,000년 전 그곳에 '중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은 신라처럼 중국도 끊임없이 외부를 의식하면서 중국이라는 정체를 만들어갔다. 중국을 중국답게 만든 가장 결정적 계기는 '오랑캐의 발명'이었다. 


빠르게는 이미 주(周)왕조부터 중국인은 사방의 이민족들을 '오랑캐'라고 불러 그들을 '야만인'으로 설정하는 한편 그들 자신은 오랑캐와는 구별되는 '문명인'을 자처하는 방식으로 중국(인)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갔던 것이다.


중국은 스스로 만들어지고 발전하며 성장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중국 만들기'라는 수 없는 공정을 거친 결과물이 지금의 중국인 것이다.


하상주 단대공정의 진두지휘자 이학근



이러한 중국이 '21세기형 또 다른 중국'을 만들고 있다.


1996년 중국 정부는 '국가 제9차 5개년계획 중점과학기술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사업 중 하나가 '하상주(夏商周) 단대(斷代) 공정(工程)'이다.


역사학자, 고고학자, 천문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 200명이 투입된 이 사업은 제목 그대로 하·상·주 3대 왕조의 연대를 확정하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중국 정부는 사업 시작 4년6개월만인 2000년 11월 9일 완료를 선언했다.


그 결과 하왕조는 BC 2070년에 시작된 것으로 '확정'됐고, 상왕조는 BC 1600년 무렵에 건국했다는 학설이 정립됐다. 나아가 상왕조 임금인 반경이 은(殷)으로 천도한 때는 BC 1300년 무렵, 주왕조의 시작은 1046년으로 각각 설정됐다.


중국은 왜 국가가 직접 나서서 이런 '이상한' 사업을 추진했을까? 


가장 단순하게는 사마천의 「사기」가 서주(西周) 시대 공화(共和) 원년(기원전 841년)이 돼서야 비로소 연대를 기록하기 시작한 반면 그 이전은 연대를 공백으로 놓아두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하상주 단대공정' 프로젝트는 사마천이 포기해버린 상고시대 중국 기년(紀年)을 확정하는 사업이라고 우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 혹은 위험성은 '새로운 중국(사)의 창출'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국가의 이름으로 공포됨으로써 공화 원년 이전 1,200년에 달하는 시대가 '전설의 시대'를 탈출해 '역사의 시대'로 편입됐다. 아울러  이렇게  새롭게 보충된 역사의 시대는 중국사의 영역으로 공식 포섭됐다.


이 프로젝트가 확정한 중국 상고사 기년이 정확한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중국은 늘어난 연대만큼 중국(사)의 영역과 연대를 확대하게 된 셈이다. 


현재의 국가가 수천년 전 아득한 과거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삼아 직접 지배하고자 하는 이러한 중국의 상고시대 '연대 확정'이 민족지상주의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 우익교과서나 한국의 국사교과서만큼이나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근 완역 소개된 「천년의 학술현안」(일빛)은 '하상주 단대공정' 프로젝트의 성립에서 추진 및 완결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엮은 다큐멘터리다. 


저자 웨난(岳南)은 중국의 고고학 발굴기 전문작가로,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었다. 상·하 370쪽 안팎. 각권 1만4천800원.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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