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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학생부군신위, 내가 한문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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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 이어진다.

큰집에 가서 큰아버지께 지방을 받아오는 심부름이 내 차지였는데 나는 그게 그리 귀찮았다. 마침 1921년생인 선친보다 열살이나 많은 큰아버지도 연로하기 시작하셨으니 더 싫어졌다.




지방이라 해봐야 꼴랑 현고 학생부군 신위 현비 유인 성산배씨 신위 이것뿐이었으나 큰아버지는 글자를 아주 잘 썼고 나는 지금도 그 큰아버지 글씨를 따를 수 없다.

결국 어느 시점엔 내가 볼펜으로 쓰야 했다. 내 손으로 처음 쓰는 지방 글씨가 그리도 두려울 수 없었다. 그때가 내가 막 중학교 입학해 한문 이라기보다는 한자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교재라 해봐야 수욕정이풍부지 양약고구이어병 블라블라하는 교과서가 전부였지만 중삼 때인가 고등학생이 배우는 한문2인가 하는 교재를 입수하고는 춘야연도리원서며 적벽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다 까먹었지만 그땐 모지리 다 외웠다.

해 보니 한문이 주는 매력이 좋아 나중엔 주객이 전도해 한문 혹은 한문학 자체를 혹닉했으나, 나를 한문으로 이끈 힘은 학생부군신위 이 딱 여섯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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