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한글사전 '말모이' 원고, 보물 된다
송고시간 2020-10-08 17:46
임동근 기자
'조선말 큰사전 원고'도 보물 지정 예고
정무감각 없기로 소문난 정부부처로 문화재청 만한 데가 있을까마는, 그런 문화재청에서도 요새는 부쩍부쩍 시류에 영합하는 감각을 발휘하곤 하는데, 어제 보도자료를 통해 배포한 말모이 원고뭉치와 조선말큰사전 원고뭉치 보물 지정 예고도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고 본다.
한글날에 맞추어 부러 그 전달인 8일 제5차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회의를 개최하고는 국가등록문화재들인 ‘말모이 원고’랑 ‘조선말 큰사전 원고’ 2종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 예고하기로 심의했다는 것인 바, 그네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애초 문화재청은 등록문화재 중에서도 다음 아홉 건을 보물 지정 대상으로 검토했단다.
① 데니 태극기(국가등록문화재 제382호) ② 김구 서명문 태극기(제388호) ③ 불원복(不遠復) 태극기(제394호) ④ 진관사 소장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제458호) ⑤ 말모이 원고(제523호) ⑥ 조선말큰사전 원고(제524-1호) ⑦조선말큰사전 원고(제524-2호) ⑧ 윤동주 친필 원고(제712호) ⑨ 이봉창 의사 선서문(제745-1호)
이 중에서 한글날을 앞뒀다 해서 우선 그와 밀접한 저 두 건을 우선 보물로 지정키로 했다는 뜻인 듯하거니와 이들을 평가하면서 문화재청은 "두 건 다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 아래 우리 말을 지켜낸 국민적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대한민국 역사의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는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평가한다.
저 중에서 말모이원고는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라는 데서 주관해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 김두봉(1889~?), 이규영(1890~1920), 권덕규(1891~1950)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한글사전 ‘말모이’ 원고다.
그들이 기획한 한글사전은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 ‘말모이’란 말을 모은 창고라는 뜻이니 결국 요새 쓰는 말을 빌린다면 사전이다. 이를 주도한 조선광문회는 익히 알려졌듯이 1910년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국학 전문 연구기관 겸 출판사다. 그에 앞서 최남선은 1907년 신문관新文館이라는 출판사를 세우고는 《대한역사》·《대한지지大韓地誌》·《외국지지》 같은 단행본과 잡지 《소년》을 발간했다.
‘말모이원고’는 듣자니 1911년 시작했지만 1914년 그 주모자 주시경이 사망함으로써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행히 그 초반부였음이 분명한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을 수록한 1책이 기적으로 살아남았다.
이를 보면, 해당 원고는 240자 원고지에 단정한 붓글씨체로 썼고 ‘알기’, ’본문‘, ’찾기‘, ’자획찾기‘ 네 부분으로 구성했다. ’알기‘에는 범례에 해당하는 6개 사항을 표시하고 괄호에다가 품사를 제시하였으며, 뜻풀이는 한글 또는 국한문을 혼용해 서술했다. ’찾기‘는 색인 본문의 올림말을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하고, ’자획 찾기‘는 본문에 수록된 한자 획수에 따라 낱말을 찾게끔 했다. 아울러 한자어와 외래어 앞에는 각각 ’+‘, ’ב를 붙여 구분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말모이원고’ 가장 큰 특징으로는 이러한 체제가 한 눈에 보이게끔 사전 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고지 형태 판식板式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고서古書의 판심제版心題를 본 따 그 안에 ‘말모이’ 라는 책 이름을 적고, 원고지 아래 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한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을 안내했다.
주시경이 사망하고 1916년 김두봉이 이 원고를 바탕으로 《조선말본》이라는 문법책을 간행하기도 했지만 김두봉이 3․1운동을 계기로 상해로 망명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사전 원고는 영원히 사장하고 만다.
더 주시할 자료는 조선말큰사전원고. 이번에 보물 예고한 원고는 한글학회 전신인 조선어학회가 1929~1942년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이들은 (사)한글학회(8책), 독립기념관(5책), 개인(1책) 총 3개처에 분산된 상태다.
이중 개인소장본은 1950년대 ‘큰사전’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 김민수 고려대 교수 유족이 소장품으로 ‘조선말큰사전 원고’의 「범례」와 「ㄱ」부분에 해당하는 미공개 자료로 이번 보물지정 조사 과정에서 발굴해 함께 지정 예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원고 얘기를 어디선가 본 듯한데, 이번에 조사가 이뤄진 모양이다.
유의할 점은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사)한글학회 소장본은 총 12책. 개중 4책은 광복 직후~1950년대 작성된 여벌 원고(전사본)로 드러났다. 그런 까닭에 보물 지정 대상에서는 제외하되, 그 자체 의미는 없지 않으므로 국가등록문화재라는 지위는 유지키로 했다고 한다. 문화재위원회나 문화재청이 한글학회 눈치를 본 듯한 느낌도 없지는 않다. 그에 해당하는 다른 원고가 사라졌다면 몰라도 있는 마당에 이러기로 한 점은 언뜻 동의하기 어렵다.
‘조선말사전 원고’가 유전한 과정은 유명하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증거물로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으니, 이를 토대로 삼아 1957년 ‘큰사전’(6권)으로 나온다. 광복하던 해에 출범한 도서출판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했다.
큰사전은 1947년 10월 9일 제1권을 발행한 이래 1949년 5월 5일 제2권, 1950년 6월 1일 제3권, 1957년 8월 30일 제4권, 1957년 6월 30일 제5권, 그리고 1957년 10월 9일 마지막 제6권이 발행됨으로써 대미를 장식한다. 1~2권은 ‘조선말큰사전’이라 했다가 3~6권에서 ‘큰사전’이라 했다.
조선말사전편찬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괄호 속 인물은 1931년 증원된 이들이다.
권덕규, 김법린, (김병규), (김상호), (김윤경), (김철두), 로기정, (명도석), 박승빈, 방정환, (백남준), 신명균, 안재홍, 유억겸, (윤병호), 이광수, 이극로, (이만규), 이병기, 이상춘, (이순탁), 이시목, (이우식), 이윤재, 이중건, (이형재), (이희승), 장지영, 정열모, 정인보, (조만식), 주요한, 최두선, 최현배
1929년 당시 개성 송도고등학교 교사 이상춘은 ‘조선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선어학회에 자신이 모은 9만여 한글낱말을 무상으로 제공한 일도 있다.
말모이건 조선말큰사전이건 사전으로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데, 무엇보다 예문이 없다는 점이다. 단어가 어떤 문장에서 어떤 맥락으로 사용하는지 예문을, 그것도 풍부히 제시해야 함에도 이에 대한 고려는 전연 없다시피 했다. 이런 이상한 전통은 줄곧 이어져, 겨우 국어대사전에 와서야 겨우 극복 기미를 마련했다.
나는 예문이 없는 국어사전시대를 공부했다. 동시대 영어사전과 비교할 적에 예문이 없는 이 따위를 사전이라 할 수 있는지 심한 자괴감이 들곤 했다. 그네들이 이룩한 선구적인 공로야 폄훼할 생각이 없으나, 사전이 예문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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