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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포장하며 장욱진 화백은 그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김원용씨는 이제 한달동안 무얼 먹고 사나?"
*** Editor's Note ***
김원룡은 1세대 고고학도 겸 미술사학자로 국립박물관에 봉직하다 1961년인가 서울대에 고고인류학과가 창설되자 그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동안 혼자 교수였고 신생인 데다 인기가 없는 학과라 매양 신입생 모집 때마다 미달 사태가 나서 괴로워했다.
이후 잠깐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땐 교수가 봉급으로 생활할 때가 아니었다.
삼불이라는 호를 쓴 그는 각종 정부 위원을 독식했고 각종 회의에 참석했다.
지금도 각종 회의에 불려다니며 짭짤한 수입을 내는 고고학 교수가 더러 있다. 아마 그 수당이 봉급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장욱진 걱정과는 달리 적어도 수입 문제는 큰 걱정은 없었다.
문젠 재테크. 그에 얽힌 삼불 이야기도 있으나 그건 훗날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삼불은 김원룡이라고 쓰나 그 자신은 김원용이라 썼다.
북한 사투리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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