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글을 쭉 보신 분들은 이해하겠지만,
해방이후 우리나라는 그때까지 존재한 모든 관립 공립학교를 싹싹 긁어모아 서울대라는 미국식 종합대학을 하나 간신히 만들어 놓고 실신했다는 표현이 옳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 놓은 서울대도 실상을 들여다 보면 대학연구실에서 박사까지 마친 교수들이 거의 없어 (경성대 법문학부 전체교수에서 박사학위 소지자가 2명인가 그랬고 나머지는 전부 학사소지자였다. 당시에는 정식대학 졸업한 학사학위 소지자도 조선에는 거의 없어 학사학위 소지자 교수로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할 수 있다.) 대학자체가 이름만 번듯하지 완전 부실 대학이었다 하겠다.
해방이후 이승만 정권 10년간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고등교육기관 증설, 고등교육자 숫자 배가에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렸는데
사실상 1960년대 이후의 경제발전은 이승만 정권 10년간 교육제도의 확충 드라이브와 토지개혁 두 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교육의 특징은 사립대학에 대한 의존도가 무지하게 높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는 경우도 보지만 그렇게 볼 것이 아니라,
땡전 한 푼 없는 나라에서 그나마 고등교육기관을 증설할 방법은 결국 사립대학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할 것이다.
토지개혁 과정에서 지주들의 돈이 교육기관에 흘러들어가 사학재단이 만들어지면 이를 용인하는 정책을 자유당정권은 고수했는데, 이것도 지금 일각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나쁘게만 볼 부분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사학의 증설 외에 1950년대 대한민국의 강력한 교육확충 정책이 가능했겠느냐 이것이다.
이것은 마치 1960년대 이후 외채 없이 한국 경제 발전이 가능이나 했겠느냐 하는것과 같은 질문인데,
땡전 한 푼 없는 나라에서 경제발전, 교육개발은 외채와 사학 재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그것이 가능하다, 외채 없이, 사학 없이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마 그 반대쪽 입장일텐데,
그런 정책을 펴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는가 하는가는 휴전선 북쪽의 나라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교육제도가 전부 정부의 공적 자원으로 운영되고 그렇게 되었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쪽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간 북한의 교육제도가 저 모양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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