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묘사〔靈妙寺〕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허백당시집虛白堂集詩集> 제5권 시詩
고찰 폐허 된지 세월 얼마인고 / 古刹荒蒼閱幾春
그때 흔적 티끌 되고 말았네 / 當時遺跡已成塵
황금 큰 조각 비로자나요 / 黃金大像毗盧佛
백옥 귀태 여왕 몸이네 / 白玉嬌姿女主身
탑 그림자 마당 백 척 질러 가르고 / 塔影半庭橫百尺
종소리 골짝 나가 많은 사람 일깨우네 / 鍾聲出谷警千人
이끼 낀 절터 사방으로 지저귀는 새 / 苔墟四面多啼鳥
말 멈추고 석양에 한번 탄식하네 / 駐馬斜陽一愴神
[주-D001] 영묘사(靈妙寺) : 경주부(慶州府)에 있던 절인데, 신라 시대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창건했다고 한다.
[주-D002]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는 광명변조(光明遍照)의 뜻으로, 즉 부처〔佛〕의 진신(眞身)을 나타내는 칭호라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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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 번역을 원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왕창 손댔다.
이 영묘사는 신라사, 나아가 한국불교사에서 매우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그 위치가 또 다른 같은 시대 왕실 거찰 흥륜사興輪寺와 뒤섞여 적지 않은 논란이 있거니와, 함에도 지금의 경주 시내임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변함없다.
허백당이 경주를 돌아볼 적에 남긴 이 시는 영묘사 역사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증언이다.
우선 성현 당대에 이미 폐허가 됐음을 안다. 그럼에도 완전한 폐허는 아닌 듯하다. 이는 후술한다. 둘째 웅대한 탑이 성현 당대까지 있었다.
셋째, 비로자나를 봉안했다. 이 비로자나가 영묘사 축건 당시 봉안품일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비로자나가 유행한 시대는 신라 하대를 아마도 기다려야지 않을까 싶어서다.
넷째 白玉嬌姿女主身라는 말이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인지 단안하지 힘들다. 문맥으로 보아 이 영묘사에는 성현 방문 당시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그와는 별도로 무슨 백옥으로 만든 여인상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섯째, 탑이 있고, 비로자나를 봉안한 것으로 보아 건축물 주축은 폐허가 됐지만, 저들을 봉안한 아마도 후대 건축물은 있었다고 보인다. 종소리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종각도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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